[이지현의 두글자 발견 : 영광] 순종하는 삶, 영광이었습니다

스페인 오비에도 산 살바도르 대성당 광장에서 거리 악사들의 연주를 경청하는 노인. 지금까지 그의 인생이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었다면 나팔소리로 찬미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오비에도(스페인)=황병설 기자

사람들은 종종 “만나서 영광입니다” “영광의 주인공을 소개합니다”란 말을 한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제 삶의 목표입니다”란 말을 자주 한다.

영광(gloria). 사전적 의미로 ‘빛나고 아름다운 영예’란 뜻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본질, 찬란한 광채, 놀라운 능력 또한 그의 임재’를 의미한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언급할 때는 ‘내가 아닌 하나님이 하셨다’는 고백이며, 모든 공로를 주님께 돌려드린다는 의미이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돌려진 존경과 영예를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1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진정한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란 의미다. ‘영광을 돌린다’ ‘영광을 드러낸다’는 것은 인간 안에 내재한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과 성품을 드러내는 것이다. 따라서 부정한 방법으로 성공한 후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린다”고 간증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영광은 하나님 자신

영광이란 단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신학자들은 “영광이란 하나님의 임재를 인간이 인식한 것을 효과적으로 표현한 용어”(알란 리처드슨), “영광은 하나님의 신성이 드러나는 것”(벵겔) 등으로 정의했다. 즉 영광은 하나님의 임재는 물론 동행하심을 체험한 후 주님을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다.

영국의 복음주의 설교가 마틴 로이드 존슨은 ‘영광’(복있는사람)에서 “하나님이 지니고 계신 최고의 속성은 영광이며 하나님을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고 말한다. 또 “하나님은 피조세계를 통해 그 영광의 일부를 나타내시며, 묵상하는 사람은 자연 세계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산 살바도르 대성당 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예수의 성해포(聖骸布·santo sudario). 예수를 십자가에서 내렸을 때 몸을 덮었던 면포로 전해진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한 가지 이유는 형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하나님의 영광은 그의 아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서 최고조로 나타났다.

미국 베들레헴 침례교회 존 파이퍼 목사 역시 ‘성경과 하나님의 영광’(두란노)에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이다.(빌 2:11) 이것이 하나님의 특별한 영광이고 그분의 성경의 특별한 영광이다. 어디서나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이며 주된 수단은 그분이 친히 예수 그리스도로 낮아지신 일이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이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다.”(고후 4:4)

피조물에 깃든 영광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시려고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다. 모양이 크든지 작든지, 혹은 아름답게 보이든지 그렇지 않든지 간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됐다. 우리가 삶의 의미와 목적을 이해하는 데 있어 이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하다.

프레드릭 비크너는 영광이 작품에 깃든 예술가의 손길이 외부로 발현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님에게 있어 영광은 예술가에게 있어 스타일과 같다.… 석양과 별이 빛나는 밤뿐 아니라 먼지 바람 열대우림 누룩뱀 우리 얼굴이 모두 틀림없이 한 예술가의 작품들이다. 영광은 바로 작품에 깃든 예술가의 손길이 외부로 발현되는 것이다. 거룩함이 내적인 발현이듯 말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목격하고 그분의 스타일을 분별하는 것은, 천국의 이편에서 그분께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길이다.”(‘통쾌한 희망 사전’(복있는사람) 중)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셨고 당신의 영광스러운 속성을 인간에게도 부여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알기를 바라며 삶 속에서 영광을 드러내기를 원하신다. 따라서 하나님을 아는 것이 먼저이다.

은발은 영광의 면류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성공이나 성취가 아니다. 대학입학 수석이나 미인대회 수상이 아니다. 스포츠 경기의 승리나 대기업 취업이 아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삶을 말한다. 스포츠 경기에서 역전 골을 넣지 못해도, 아픈 몸이 회복되지 못해도,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지 못해도 오직 주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이 영광된 삶이다.

가끔 누군가를 기다리는 양복 차림의 노신사, 계급장을 손질하는 퇴역 장군, 연세가 많은 아파트 경비원, 손잡고 산책길에 나선 노부부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생기있고 건강했던 젊은 시절을 상상해보곤 했다. 지난 세월 온갖 희로애락과 숱한 영광스러운 순간들이 지나갔을 것이다. 성경은 “백발은 영광의 면류관이며 의로운 삶에서 얻어지는 것이다”(잠 16:31, 현대인의 성경)라고 말한다. 백발은 경륜을 쌓으며 일생을 살아온 결과에 대한 훈장이란 뜻이다.

명예로운 훈장을 받지 못해도 순종하며 말씀대로 살았다면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7~8)는 바울의 고백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먹고 마시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말은 습관적인 고백이 아닌 진실한 믿음의 고백이 돼야 한다.

출애굽의 명령을 받은 모세는 하나님께 “당신의 영광을 보여주소서”(출 33:18)라고 기도했다. 하나님께 한 걸음 더 가까이 가게 해달라는 기도였다. 우리도 어찌할 바 몰라 막막할 때 하나님의 임재(영광)를 구한 모세의 기도를 기억해야 한다. 개인적 욕망을 위한 기도가 아닌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는 기도를 할 때 우리 개인의 영적인 성장과 교회의 부흥도 소망할 수 있을 것이다.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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