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처에 빈티지 가게가 생겼다. 이것저것 둘러보다 진열된 그릇에 생긴 실금을 보았다. 무심코 “참 귀한 것일 텐데 금이 갔네요”라고 말을 건네자 주인은 배송 과정에서나 진열되어 있다가 부주의로 상처가 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그릇을 살펴보았다. 귀한 것으로 보여 내 것이 아닌데도 아깝다 싶었는데, 주인의 표정은 그다지 속상해 보이지 않았다. 그는 몇 가지 도구로 능숙하게 그릇을 손질하고는 선반에 놓여 있던 장신구를 담아 순식간에 보석 받침대를 만들어냈다. 쓸모가 없어졌다고 생각했던 그릇이 원래부터 보석을 위한 것이었던 양 변신했다. 순간의 마법에 내가 신기해하자 주인은 빙긋 웃었다. “쓰임새는 상황 따라 달라지는 거죠.”

어렸을 때는 상대가 나와 잘 맞지 않고 부딪칠 듯하면 최대한 거리를 두며 관계를 정리하려 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보니, 한 면에서는 나와 안 맞던 이가 다른 일로는 잘 지내기도 하고, 나도 상대방도 가치관이나 스타일이 바뀌기도 했다. 한순간 안 맞는다고 다 정리하는 식으로 살다 보면, 주변에 남아 있을 사람이 없다는 걸 슬슬 알아가게 되었다.

진료 중 실제 진단의 중증도보다 심한 충격을 받는 경우를 본다. 물론 누구에게든 자신이나 아이의 아픔을 아는 것이 힘든 일일 테지만, 다소 과장하자면 그 어려운 부분 때문에 이미 자신을, 또는 아이를 ‘정상’에서 벗어난 ‘흠 있는 제품’으로 본다는 인상을 받기도 한다. 실제로 병원에 온 뒤로 부모가 툭하면 ‘병자’라느니 ‘넌 이미 글렀어’라고 한다며, 차라리 병을 몰랐다면 좋았겠다는 아이들의 하소연을 듣는다. “전 이미 정상이 아니잖아요”라며 자포자기한 듯 행동하는 아이들도 만난다. ‘완벽한 정상’은 환상일 뿐이고, 그릇 하나도 세상에 쓰임이 다양하건만 너는 너 자신으로도 이미 충분하다고 아무리 위로해도 상처받아 온 아이들의 표정은 쉽사리 풀리질 않는다. 선천적인 질병만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사고나 노화 등 우리가 광고에나 나올 법한 ‘완벽’한 순간을 영원히 유지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없는 환상에 매달리기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나 자신도 빈티지 그릇처럼 여유 있는 쓰임새로 살 수 있다면 좋겠다.

배승민 의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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