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들른 서울 시내 한 중학교 교실 정면에는 이런 급훈이 액자에 걸려 있었다. ‘6년을 준비해서 60년을 산다.’ 중·고교 6년 공부가 대학을 결정하고 그 대학이 인생을 좌우한다는 의미를 담은 듯했다. 이 대학을 결정하는 14일 대학 수학능력시험에 48만여명이 응시했다. 이 시험에 대다수 수험생과 학부모는 사활을 건다. 대학 진학이나 전공에 따른 경제적 보상 차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특성화고 졸업생 첫 연봉은 평균 2097만원이다. 대기업 대졸 신입사원 연봉은 4086만원이다. 2배 가까이 차이 난다. 이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더 커지게 마련이다. 대학 전공에 따른 수입 차도 어마하다. 의사, 변호사, 세무사 등 전문직 8만여명의 월평균 보수는 1300여만원이다. 의사는 임금근로자(316만원)의 최고 13배를 번다. 드라마 ‘SKY캐슬’에서도, 현실의 조국 장관 부부도 딸을 의대에 보내기 위해 기를 쓴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서울 강남에서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의대 진학을 준비하는 학원이 있을 정도다. 문제는 이렇게 입시를 준비할 수 있는 수험생은 고소득층 부모를 둔 극소수라는 것이다. 지방에서 서울 한 대학에 운 좋게 진학했던 내가 과 동기에게 들었던 놀라운 얘기 중 하나는 이거였다. “매월 400만원씩 과외를 ‘발라주면’ 돌○○○가 아닌 이상 명문대 간다.” 당시 한 학기 대학 등록금보다 큰돈을 한 달 과외비로 쓰는 부모가 있다는 것도 별세상이었고 바른다고 표현할 정도로 사교육에 의존하는 수험생이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그런데 현실이다.

지난해 월평균 소득 800만원 이상 가구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50만5000원, 200만원 미만 가구는 9만9000원으로 5배 이상 차이가 났다. 교육이 계층 사다리가 아니라 부의 대물림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조 전 장관의 딸이 입시를 위해 제출한 논문 목록과 인턴 경력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넘사벽’이다. 이런 입시제도라면 부모의 직업과 소득에 따라 학력 격차가 벌어지고 이 격차가 다시 또 소득 격차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를 막기 위해 대학 입시 등 교육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논의가 한창이다.

정부는 얼마 전 외고·자사고 등을 일반고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야당 한 유력 정치인은 이에 대해 “국민을 ‘붕어, 가재, 개구리’로 가둬놓겠다는 것인가”라며 비판했다. 평준화된 교육으로는 소위 ‘개천에서 난 용’이 나올 수 없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 역시 성적 중심의 입시 논쟁일 뿐이다. 대학에 가지 않더라도, 전문직을 갖지 않더라도 안정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닐까.

지인의 경험이다. 유학 시절 노르웨이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병원 청소부나 안내원 등은 모두 건장한 노르웨이 태생 백인들이었는데, 의사들은 죄다 가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파키스탄 또는 인도 출신의 이민자들이었던 모양이다. 의사는 이민 온 부모들의 교육열로 이해할 수 있겠다. 백인 청소부들은 무엇을 뜻할까. 어떤 직업을 갖고 살아도 자기 삶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북유럽 사회복지 제도의 영향이라고 짐작해볼 수 있다.

노르웨이는 소득이 일정액 이상 줄어들면 과거 수입을 기준으로 소득을 보전하는 실업수당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는 높은 세율과 수준 높은 복지로 유명하다. 핀란드는 소득에 관계없이 최소생활비를 지급하는 기본소득제를 실험했다. 한국에서는 경기도가 기본소득 개념에 가까운 청년수당에 이어 농민수당을 도입하기로 했다.

수능 시험에서 원하는 성적을 얻지 못하는 학생들도 많을 것이다. 만약 기본소득이 보장된다면 이들은 아마도 미래를 훨씬 덜 불안해할 것이다. 기본소득은 한 예다. 젊은이들은 한국의 치열한 입시와 취업 경쟁에 넌더리가 난다고 호소한다. 이제 ‘개천에서 붕어로 살더라도’ 누구나 소박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 구조를 고민했으면 좋겠다.

강주화 온라인뉴스부 차장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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