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민들 가축 쉽게 찾도록 GPS 송신기 개발해 보급 중이죠”

IT기술로 중앙아시아 유목민 돕는 윤영찬 라이브스톡 대표

윤영찬 라이브스톡 대표가 최근 경기도 수원 장안구 사무실에서 GPS송신기를 말 모형에 부착한 뒤 스마트폰 화면으로 위치를 확인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수원=송지수 인턴기자

“특별하거나 뛰어난 기술이 있는 건 아닙니다. 잊히고 사라져 가는 문화와 사람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을 뿐입니다.”

경기도 수원 장안구의 한 사무실에서 최근 만난 윤영찬(33) 라이브스톡 대표는 창업 2년 차를 맞은 회사를 이렇게 소개했다. 사무실 입구에 마련된 작은 선반엔 안테나가 달린 전자제품들이 크기별로 정렬돼 있었다. GPS가 장착된 송신기였다.

“처음엔 오래된 무전기처럼 컸습니다. 신기술을 접목하면서 제품의 크기는 점점 작아졌지만, 유목민의 삶을 지킬 수 있는 범위는 더 커졌죠.”

테이블에 앉은 윤 대표는 말 인형을 앞에 두고 송신기를 목에 걸었다. 송신기가 불빛을 내며 작동하자 스마트폰 화면에 위치가 표시됐다. 그는 “일상적으로 내비게이션 화면을 보는 우리에겐 별것 아니지만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생활하는 유목민들에게 이 화면은 보물지도와 같다”고 설명했다.

지난 6월 카자흐스탄 알마티주 케겐 지역에서 한 유목민이 GPS송신기를 말에 부착하는 모습. 수원=송지수 인턴기자

드넓은 초원에서 가축을 방목해 키우는 유목민들은 수천 년의 유목 역사 가운데 해결하지 못한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바로 재산 1호인 가축을 찾아 헤매는 일이다. 잃어버린 말 한 마리를 찾기 위해 15일을 허비하기도 한다. 길 잃은 양은 야생동물의 먹이가 되는 일이 허다하다. 윤 대표는 “말의 경우 낮에 젖을 짜기 때문에 밤에 풀어 두고 새벽에 찾는데 보통 유목민 가정의 유소년들이 말 찾기에 나선다”며 “3~4시간 지나도록 말을 못 찾을 땐 학교에 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소수민족 선교에 나선 부모님을 따라 8세부터 10년 동안 중앙아시아 지역에 살았다. 청소년기를 유목민들과 함께 보내며 그들의 삶을 들여다본 윤 대표는 두 가지를 마음에 새겼다. 첫 번째는 전통적 유목 생활이 지켜가야 할 소중한 문화라는 것, 두 번째는 문명의 혜택으로부터 소외된 유목민들에게 자신의 관심 분야인 전자통신기술을 활용해 도움을 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한동대에서 전산전자학을 전공한 그는 과 동기, 동아리 선후배들과 뜻을 모았다. 정부와 대기업이 대규모 투자를 감행해야 하는 통신 인프라 대신 최소한의 전력 사용이 장점인 GPS를 활용해 가축의 목에 매달 수 있는 송신기와 스마트폰 수신기를 방목에 접목하는 게 핵심이었다.

아이디어도 참신했고 비전도 있었지만, 재원이 문제였다. 프로토타입(시제품)까지 만들고도 펀딩에 나서는 이가 없어 프로젝트 중단을 고민할 때 기적처럼 기회가 찾아왔다. 2017년 삼성 투모로우솔루션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기술지원과 후원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여름엔 삼성전자의 C-Lab팀과 함께 카자흐스탄 케겐 지역을 방문해 유목민 60가구를 대상으로 심층연구를 진행했습니다. 라이브스톡의 송신기와 중계기를 사용해 봤더니 하루 평균 3시간씩 가축을 찾으러 다니던 걸 1시간 이내로 단축할 수 있었어요. 초기엔 1회 충전 시 하루 쓸 수 있던 송신기 배터리가 이제 20일 이상 버틸 수 있게 됐습니다.”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의 카자흐스탄 순방 때는 스타트업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했다. 당시 카자흐스탄 농림부 산하 축산연구소, 알마티 주정부와 방목가축 관리 프로젝트 시범사업 협약을 체결하는 성과도 거뒀다. 기아대책(회장 유원식)은 라이브스톡이 기술 개발에 집중할 수 있도록 든든한 조력자가 돼줬다. 국제사업부와 카자흐스탄에서 사역 중인 기대봉사단이 라이브스톡의 현지 활동을 돕고, 국내에선 연구결과 발표를 위한 자료집 제작과 콘텐츠 홍보를 맡는다.

윤 대표는 “단순히 비즈니스를 위한 제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우리 이웃이 걸어갈 더 좋은 길을 내는 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도움의 손길을 보내주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교지의 생활환경을 개선하고 지역 주민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게 하나님이 내게 주신 선교사 자녀(MK)로서의 소명”이라고 덧붙였다.

라이브스톡 사무실은 매주 월요일 아침 예배공간으로 변한다. 5명의 팀원이 돌아가며 예배를 인도하고 교제를 나눈다. 최근엔 라이브스톡 제품을 목에 단 가축들의 이동경로가 데이터로 집약돼 수출 인증을 통과하고 유목민들이 생산하는 축산물이 소비자들의 식탁을 건강하게 만드는 선순환이 이뤄지는 것을 기도제목으로 정했다.

윤 대표는 “가축(livestock)에 그치지 않고 유목문화와 삶의 이야기(live’s talk)를 전하는 도구로 쓰임받을 라이브스톡을 기대해 달라”며 응원을 요청했다.

수원=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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