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우치산게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펼쳐진 티노 세갈의 퍼포먼스.

‘오카야마(岡山) 아트 서밋’은 일본 오카야마현의 현도인 오카야마시에서 3년마다 개최되는 트리엔날레다. 이번이 2회째이니 124년 역사의 베니스비엔날레는 물론 24년이 된 광주비엔날레에 견줘 ‘듣보잡(듣지도 보지도 못한 잡놈이라는 뜻)’ 현대미술 행사다.

지난 6~7일 이곳을 찾았다. 프랑스 작가 피에르 위그(57)가 예술감독을 맡았다는 소식에 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2002년 구겐하임미술관이 수여하는 휴고 보스상을 수상한 위그는 2017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에서 버려진 아이스링크를 파서 고고학 유적처럼 만든 프로젝트로 화제가 됐던 현대미술계의 걸물이다. 비엔날레가 난립한 한국에 던질 메시지가 있지 않을까 궁금했다.

전시 구경도 전에 놀라운 두 가지를 발견했다.

먼저 참여 작가가 겨우 17명(팀)이라는 점이다. 전국에 총 15개의 비엔날레가 열리는 한국의 경우 간판 격인 광주비엔날레가 165명이 참여하는 초대형 전시로 피로감을 줬었다. 그나마 줄인 부산비엔날레도 67명이었다. 오카야마 아트 서밋은 규모 강박증에 걸린 한국 미술계에 시사하는 바가 컸다.

두 번째, 일본 작가가 한 명도 없다는 사실도 놀랍다. 감독의 재량권, 선택과 집중의 자세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반드시 지역 출신 작가가 끼어있다. 부산비엔날레 집행위원장 출신의 최태만 국민대 교수는 17일 “지자체의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니 현지 작가도 선정해달라는 지역 미술계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시는 1887년 건립된 구(舊) 우치산게 초등학교를 메인으로 해서 인근 오카야마성, 옛 간장 공장, 미술관, 공원 등 역사·문화적 장소와 일상 공간에서 펼쳐졌다.

운동장 한가운데 작품이 전시된 전경. 멀리 담벼락의 나팔꽃, 담 너머 RSK 건물에 걸린 영상도 출품된 작품이다.

초등학교 전시는 운동장 활용이 압권이었다. 조각, 설치, 영상, 퍼포먼스 등 현대미술의 전 장르를 운동장에서 맛볼 수 있었다. 운 좋게도 운동장에서 막 시작한 퍼포먼스를 볼 수 있었다. 남녀가 마주 앉아 외계어 같은 소리를 내는 퍼포먼스를 코앞에서 본다는 건 상상도 못했다. 감독인 위그의 영상작품도 운동장에서 환한 낮에 볼 수 있었다. ‘영상=어두운 실내’라는 통념을 깼다. 카메라가 관람객의 얼굴을 인식하고 이를 다른 인공물과 조합한 괴물 같은 이미지가 시시각각 나오는데, 퍼포먼스의 괴기한 소리와 묘하게 어울렸다.

운동장 한가운데에는 무릎 높이의 청동 조각이 있었다. 로댕의 그 유명한 ‘생각하는 사람’의 무릎 아랫부분에서 인체 형상을 쏙 뺀 복제품이다. 프랑스 작가 에티엔 샹보의 이 작품은 연속과 불연속의 관계를 생각하게 하는데, 설치 방식이 돋보였다. 그냥 두면 밋밋할 운동장에 흙으로 동산 두 개를 쌓아 고고학적 풍경을 연출했다.

초등학교 중정을 활용한 파비앵 지로&라파엘 시보니의 설치 작품.

운동장 입구 작은 수영장도 미술작품이 됐다. 스위스 출신 파멜라 로젠크란츠는 수영장을 온통 분홍색 물로 채우곤 ‘피부 풀’이라고 이름 붙였다. 수영장을 가린 담장에 핀 나팔꽃도 미국 작가 숀 라스펫의 작품이었다.

운동장 구석 스모경기장에는 뱀 로봇이 있었다. 뱀을 통해 현실 세계와 자연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가 로젠크란츠가 붙인 제목은 ‘치유자’다. 관람객이 촬영하려고 하면 소리도 내는 이 뱀은 감독이 내건 전시 주제가 왜 ‘만약 뱀이라면(If the Snake…)’인지 힌트를 준다.

이시야마 공원에도 작품이 설치돼 일상 속으로 파고든 미술이 됐다.

전체적으로 작품 수를 최소화한 흔적이 보였다. 텐친야마컬쳐프라자에도 2개 층에 4점의 작품만 있을 뿐이었다. 복도는 작가들이 개발한 냄새 분자로만 채워져 있어 작품인 줄도 몰랐다. 옛 간장 공장에선 가상현실을 체험하고, 하야시바라미술관에선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었다. 장소마다 특색도 있었다. 모두 우치산게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걸어서 20분 남짓한 거리에 있었다. 물량 공세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심심할 수 있는, 그래서 작품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느껴지는 전시였다. 24일까지.

오카야마(일본)=글·사진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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