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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조혜련 (3) “니 얼굴에 연예인 되면 나는 대통령 되겠다”

한양대 공대 추천 받고 원서 준비 중 주위 권유로 연영과로 바꿔 합격하자 진학 반대하던 엄마 막말

한양대 연극영화과 재학시절 조혜련씨가 제주도를 방문해 기념촬영을 한 모습.

“니들 인생에 대학은 없다. 고등학교 마치고 무조건 돈 벌어라.”

중3 가을, 엄마는 귀한 아들을 제외하고 셋째, 넷째, 다섯째, 여섯째 딸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아놓고 이렇게 공표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반감이 확 일어났다. 순간 결심했다. ‘나는 대학을 꼭 가야겠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공대를 추천했다. 한양대 화학공학과. 사실 한양대 공대는 나름 성적도 높았다.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취직도 잘된다는 이야기도 들었던 터라 다른 생각 않고 그곳을 택하려고 했다.

대학 원서 내기 3일 전, 친한 친구 세 명이 찾아왔다. 친구들이 먼저 말을 꺼냈다. 내 진로에 관한 이야기였다. “혜련아 너는 사람들을 웃기고 너무 재미있어. 네가 얼마 전에 학교 축제 때 연극을 하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 너는 꼭 그 일을 했으면 좋겠어!”

친구들의 이야기인즉 나는 웃기고 에너지가 많아서 그것을 살리는 일을 했으면 한다는 거였다. 그게 바로 연극영화과였다. 나를 위해 며칠 동안 세 명이 고민했다고 한다. 감동을 받았다. 자기의 일도 아닌데 남의 인생을 위해 그렇게 진심으로 고민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말이다.

친구들은 개척교회를 다니는 크리스천이었다. 몇 번 교회를 나오라고 권유했지만 나는 당시 교회를 나갈 형편이 아니어서 거절했다.

고등학교 때 성격이 활달해서 축제나 연극제가 있을 때 연기도 하고 사회를 보며 사람들을 재미있게 해주는 끼는 있었지만 ‘내가 연예계 일을 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외모도 그랬지만 엄마가 이 사실을 알면 밭에서 호미 들고 쫓아올 일이었다.

3일 뒤 나는 원서를 내러 학교에 갔다. 당연히 내 손에는 담임이 써준 화학공학과 원서가 들려있었다. 그런데 무슨 힘에 이끌렸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냥 원서에 쓰인 학과를 연극영화과로 고치고 원서접수처에 줄을 섰다. 왜 그랬는지 모른다. 외모도 자신 없고 연기를 배워 본 적도 없었지만 그냥 그쪽으로 이끄는 강한 힘에 마음이 끌렸다. 친구들의 순수한 그 마음이 고맙기도 했고 또 내가 대학에 떨어지면 엄마가 좋아할 것 같기도 하고, 마음이 복잡했다.

당시 연극영화과 경쟁률을 보니 187 대 1이었다. 원서를 접수해 놓고 나서도 내가 합격할 확률은 거의 없겠다 싶었다. 아니,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내가 한 번에 떡 하니 합격한 것이다. 내 수험번호를 전화로 불러주자 안내원은 “축하합니다. 합격하셨어요”라고 말했다.

사실 한 번에 붙지 않으면 우리 집 사정상 재수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승부수를 그냥 던진 것인데, 붙은 것이다. 1989년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엄마는 내가 연극영화과에 합격했다는 말을 듣고 아니나 다를까 입에 거품을 물며 쏘아붙였다. “뭐, 연극영화과? 아이고, 니 얼굴에 니가 연예인 되면 내는 대통령 된다. 이 가스나야!”

말을 해도 어쩜 그렇게 예쁘게 하실까. 결국 나는 연예인이 됐고, 엄마는 대통령이 안 됐다. 첫 연기 시간, 설레는 마음으로 독백을 준비해갔다. 연기를 본 교수님은 나에게 딱 잘라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사람 웃기는데 타고났다. 연기보다 개그를 해라!”

정리=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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