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소미아·방위비 이견은 韓을 인도·태평양 전략의 하부구조로,
동맹도 이익 관점에서 보는 美의 변화와 관련 있어
청와대와 여야가 대외전략을 국가생존문제 아닌 정파적으로 다룬다면
무능을 넘어 국민에 심각한 배임 행위를 하는 것


지난 14~15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와 군사위원회(MCM)는 미국의 본심과 세계 안보 전략을 실제로 확인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지소미아(GSOMIA) 종료는 한·일 간 문제라기보다 결국 한·미 간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였고, 방위비 분담금은 동맹의 가치보다 상업적 이익이 우선하는 미국우선주의의 한 조각에 불과하다는 점을 인식하기에 충분했다. 두 현안은 미국 안보의 주요 축인 인도·태평양 전략을 받치는 하부 전략 또는 지역 전술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또 미국의 국가 이익이고, 결국엔 상업적 이익과 맞닿아 있다.

2016년, 미국은 지소미아 체결이 북한 핵·미사일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것으로 중국과는 무관하다고 밝혔었다. 2019년, 지소미아 종료에 대해 “동북아에서 중국 입장을 강화한다. 미국의 안보 이익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국무부 관계자), “중국과 북한에 이익”(마크 밀리 합참의장) 같은 외교·국방 고위관계자의 잇따른 발언은 지소미아의 현실이 어디에 있는지 말해준다. 지소미아는 한·미·일 군사정보 공유뿐 아니라 중국을 견제하는 목적이 포함돼 있고, 이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목표이다. 중국에 대한 안보 견제를 미국 이익과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방위비 증액은 미국-호주-인도-일본을 잇는 다이아몬드형 안보 체제 구축, 즉 인도·태평양 전략에 한국도 책임을 갖고 기여하라는 강력한 주문이다.

우리의 대응 전략은 어설프다. 미국의 노골적 이익추구형 안보 전략에 가치·신념·동맹의 정신으로 중재해 달라고 하는 건 순진하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0일 지소미아가 “한·일 간 풀어야 할 사항이고 한·미동맹과는 관련 없다”고 말했지만 한·미 간 가장 큰 현안이 됐다. 정부는 두 현안을 현안 자체의 좁은 시각으로만 국민에게 설명하고 있다. 장막 뒤에서 어떤 전략을 세우고 그 전략대로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무능의 결과가 아니길 바란다. 이견을 보이는 겉모습만 보고 동맹의 균열이니 하며 공격만 해대는 것도 어리석다. 이익과 관점이 다르니 이견은 당연하다. 이견을 감출 게 아니라 줄 것 주고 받을 것 받아 기존 체제를 유지하면서 이익을 확보하는 게 더 전략적이다.

지소미아 종료 결정 이후 미국의 중재 요청을 빼놓고 어떤 전략을 세우고, 세계 전략에 기반한 미국의 공세에 어떻게 대응할지, 인도·태평양 전략을 어떻게 활용할지, 큰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3개월 가까이 일본이 변해야 한다는 소리만 해왔다. 우리의 레버리지는 도대체 뭐였나. 인도·태평양 전략에 참여, 결과적인 한·미·일 삼각 안보체제 구축과 미국 미사일방어(MD) 체제 편입 등을 정부가 정치적 명분상 인정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국가 전략을 세울 때는 실제화한 현실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이미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의 다이아몬드 안보 체제의 하부 구조로서 한국을 상정한 것 같다. 미국은 큰 그림의 조각으로서 대한민국 방위 체제를, 한국은 개별 사안으로서 한·미 간 현안 대응을 하니 시각 차이가 난다.

이런 분위기가 굳어지는 게 장기적 국가이익에 보탬이 될 순 없다. 우선 한반도 주요 결정이 우리의 통제력이 닿지 않는 곳에서 우리의 생각과 달리 이뤄질 수 있다. 이를테면 트럼프가 비용 부담을 이유로 주한미군 감축·철수 카드를 툭 던질 수 있고, 재선을 위한 성과를 위해 우리가 원치 않는 방향의 대북 결정을 할 수도 있다. 막아야 한다.

초당적이란 진부한 표현은 외교·안보 분야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최소한 외교·안보 분야만이라도 청와대와 여야가 논의하고 서로 뒷받침해줄 수 있는 협의체를 만들어야 한다. 국내 정치에서 청와대와 여당은 자기네만 정의라고 우기고, 야권은 정권 망하기만 바라면서 싸우더라도, 제발 존망이 걸린 외교·안보에는 초당적인 협의 구조를 만들어 보라. 대외전략에서도 여야의 역할이 있다. 미국의 여야는 시쳇말로 짜고 치는 고스톱 하듯 한다. 미국 영토 밖에서 자국의 이익이 뭔지, 어떻게 해야 극대화하는지에 초점을 맞춰 제국을 운영해 왔다. 대외 전략에 관한 한 미국 내에서의 야권 비판은 어찌 보면 미국식 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내보이는 정도의 절차적 행위 아닌가 싶다. 그러니 ‘모든 국내 정치는 국경선에서 멈춘다’는 반덴버그 선언을 외교 대원칙으로 삼는가 보다.

국가 대전략은 정말 필요하다. 어느 한 정파가 모색하고 해결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정권은 이런 논의를 다른 정파와 다양하게 공유하지 못한다. 이건 진보 보수의 문제도, 친미 친중의 문제도, 신념과 윤리의 문제도 아니다. 국가와 국민의 생존에 관한, 공동체 이익에 관한 문제이다. 외교·안보 전략이 조선과 대한제국을 망하게 한 19세기 말에서 벗어나지 못한 건 아닌가. 대외전략의 무능은 대통령이든 여야 지도자든 국가와 국민에 대한 심각한 배임행위다.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m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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