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소미아 종료를 둘러싼 청와대의 계산법은 효과적이지 않았다. 지소미아 종료 카드로 일본을 압박하고, 미국의 중재를 이끌어내겠다는 시나리오는 통하지 않았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0일 “지소미아 문제는 한·일 양국이 풀어야 할 문제이고, 미국이 어떠한 협력을 해 준다면 우리 정부로서는 대환영”이라고 말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도 지난 9월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지소미아 협정을 체결하도록 중재했지만, 미국은 이 협정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지소미아를 한·일 양국의 문제로 한정하고, 미국의 협력을 구하는 일종의 사인이었다. 미국은 한국의 바람과는 다르게 움직였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중재’를 기대했으나, 미국은 ‘압박’을 선택했다. 미국의 메시지는 선명했다. 지소미아는 한·일의 문제가 아닌 한·미·일의 문제이며, 지소미아 종료는 중국과 북한을 이롭게 한다는 것이었다.

이달 초 관훈클럽 안보포럼 행사의 하나로 일본 도쿄 방문 중에 만난 주일 미국대사관과 주일미군 관계자들의 생각도 비슷했다. ‘미국이 왜 지소미아에 민감하게 반응하느냐’는 질문에 미 대사관 관계자들은 “지소미아 종료가 누구에게 이익이 될지 생각해 보라. 중국에 나쁜 사인을 주게 된다”고 답했다. ‘지소미아는 한·일 간 문제’라는 반문에는 “지소미아는 미국의 문제이며 미국은 당사국”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미국 관계자들은 ‘한국이 한·미·일 삼각 동맹 체제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한국은 미국보다 중국과 가까워지려 한다. 지소미아 종료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구체적인 정황은 없으나, 미국이 이런 태도를 보이게 된 배경에는 일본의 집요한 설득이나 외교적 노력이 작용한 것 같다는 인상도 받았다.

동북아에서 미국과 일본의 이해관계는 일치한다. 중국과 러시아의 인도·태평양 지역 진출을 저지하고 미국 우위의 구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주일미군 관계자는 ‘농담’이라는 전제를 달면서도 “미국과 일본의 의견이 갈리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일본도 미국과 문제가 많다. 미군들의 사건·사고, 도시 확장으로 인한 미군기지 이전 문제, 방위비 협상 등이다. 도쿄에서 만난 미치시타 나루시게 일본 정책연구대학원대학(GRIPS) 교수는 “평등한 동맹이란 없습니다. 힘이 다른데 어떻게 평등한 동맹이 있나요. 최대한 미국에 협조하면서 일본의 이익을 얻어내야지요”라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만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우스꽝스럽게 묘사되곤 한다. 하지만 미치시타 교수는 “아베 총리가 일본의 국익을 위해서 미국에 ‘아부 정책’을 잘하고 있다. 약간 굴욕적이지만 일본의 국익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평했다.

일본과 달리 한국의 셈법은 복잡하다. 미국은 물론 중국과의 관계, 북한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한다. 지정학적 위치, 경제적인 이해관계, 역사적 경험도 일본과 다르다. 지소미아에 대한 미국의 과도한 ‘압박’이 무례하다는 비판도 공감 가는 대목이 적지 않다.

다만 정부는 지소미아를 한·일의 문제라는 논리를 폈는데, 미국은 지소미아를 미국의 문제라고 말하는 상황은 반추할 필요가 있다. 한·미 간 불협화음이 공개적으로 나왔다는 것은 우리 정부가 미국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했거나, 애초에 판단을 잘못했다는 의미다. 일본과 싸우다가 미국과도 관계가 악화된 모양이 됐다. 지소미아 종료를 선택한 정부의 결정이 틀렸다고 말할 수 없지만, 신중하고 냉정한 선택이었다고 말하긴 어려울 듯하다. 중국 덩샤오핑의 외교정책으로 널리 알려진 도광양회(韜光養晦·밖으로 능력을 드러내지 않고 실력을 기른다)의 첫 번째 단계는 ‘냉정관찰(冷情觀察)’이다. 국제정세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얘기다. 조금 억울하고 비굴하더라도 인내의 시간도 필요하다.

남도영 디지털뉴스센터장 dynam@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