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 무장으로 남북 간 군사력 균형 무너지고
방위비 분담금 문제 등으로 한·미관계에 이상징후
미국과의 동맹 강화하고 자주국방에도 진력해야 진정한 평화와 통일 가능할 것


현 정세는 우리의 대북정책이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지난 10월 금강산에서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이 선임자들의 정책이 매우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북한이 현 정세와 남북한 관계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핵심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북한은 그들이 약할 때의 남북 관계를 생각하기도 싫을 것이다. 지금 북한은 스스로를 엄청난 강자로 인식한다. 세계정세도 많이 달라졌고 핵을 가짐으로써 국제적 위상도 높아졌다. 북한의 외교 대상은 미국을 비롯한 주변 강국들이다. 여기에 남한은 끼어들지도 말라고 윽박지르고 있다. 남북 관계에서 과거 방식이 복원될 가능성은 없어졌다.

남북한 관계는 철저하게 힘이 작용한다. 우리는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진 북한을 상대하게 됐다. 변화된 정세를 잘 판단하지 못한 정책은 허망하게 된다. 정부가 추구하는 북한의 비핵화나 한반도 평화, 남북 화해 무엇 하나 제대로 된 성과가 없다. 오히려 더 악화된 게 이를 증명한다. 우리는 북한이 핵으로 무장했다는 정책 환경을 냉철하게 봐야 한다. 북한이 가진 핵무기의 정치적 힘과 군사적 절대 위력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지 몰라도 그것이 현실적으로 남북한 관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부가 평화를 말로 아무리 외쳐도 이 현실을 덮을 수 없다. 힘의 균형이 파괴된 현실을 바로잡아야 우리가 추구하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현실적으로 우리의 힘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개방체제의 우월성에서 나온다. 이것으로 우리는 선진국에 올라섰다. 다만 남북한 관계는 체제 경쟁일 뿐 아니라 군사적 대결 관계다. 지금은 군사적 대결이 압도하고 있다. 그래서 대북정책의 제일이 안보에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포용정책을 적극 추진하면서 내세웠던 첫 번째 원칙이 안보를 튼튼히 해북한의 무력도발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자주국방과 한·미 연합 전력의 우위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논란에도 불구하고 햇볕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할 수 있었다. 지금은 북한의 핵무장으로 안보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우리는 이러한 도전에 자강과 한·미동맹으로 대처하고 있다. 한·미동맹은 안보의 보증수표다. 한·미동맹은 안보의 받침대일 뿐아니라 한국의 선진국 도약을 떠받치는 힘이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미동맹은 국가전략으로서 가장 중요한 선택이다.

그런데 최근 한·미 관계가 그렇게 긴밀한 것 같지 않다. 정부는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과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6월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옆에 두고 북·미 두 정상만 회담한 것도 한·미 관계의 이상징후다. 작년 한·미 합동 군사훈련 중지라는 중요한 결정도 한·미 간 사전에 협의했다는 증거가 없다. 북한은 핵무기를 활용해 한·미동맹을 약화시키고자 하는데 이것이 현실화할 수도 있다고 염려된다. 한·미 간에 인도·태평양 전략이나 한·일 군사보호협정 유지에 대해서도 의견 차이가 있다. 최근 이수혁 주미대사도 인정한 바와 같이 대북정책에 대해서도 상당한 이견이 있다. 게다가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라는 쟁점을 앞두고 한·미동맹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졌다. 한·미동맹의 약화 내지 해체는 한국이 선진국 연합에서 이탈함을 의미한다. 한번 후진국의 길로 들어가면 아무리 노력해도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우리는 후진국 연합으로 방향을 튼 나라들이 지질해지고 국민이 피폐해진 현실을 보고 있다. 진정한 국가 지도자는 한국이 선진국 연합에 머물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미동맹을 그러한 국가전략 차원에서 보라. 한·미동맹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호혜성을 기반으로 한다. 우리는 일방적인 수혜자가 아니고 상호 필요할 때 지원하게 돼 있다. 우리는 한·미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상대방의 요구를 존중하고 호혜의 한 당사자로서 필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한·미동맹과 함께 자주국방을 강화해야 한다. 우리가 피 흘려 나라를 지킬 의지가 없으면 동맹도 무의미하다. 최소한 남북한의 군사력 균형을 우리 스스로 이룩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전쟁은 군사력 균형이 무너진 데서 출발했다. 지금 북한의 핵무장으로 인해 남북한 균형은 무너졌다. 지금 돌아가는 것으로 봐서는 신뢰 구축을 통한 비핵화든 포괄적 비핵화든 협상에 의한 북한의 비핵화는 매우 지지부진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은 한국에 스스로 방어할 체제를 갖추라고 채근한다. 미국의 요구가 아니라도 우리는 국가를 스스로 지킬 힘을 가져야 한다. 남북한 군사력 균형을 위해 진력해야 한다. 그런 바탕에서 남북 간 상호 위협 감소와 핵 위협의 완전 제거를 추구할 수 있다. 1991년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은 이러한 정신에 입각한 것이었다. 남북한의 세력 균형이 된 뒤에야 비로소 진정한 경제협력도 가능할 것이다. 그때까지는 다른 방식으로 통일을 추구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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