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10명 가까운 여야 정치인이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이해찬 이철희 표창원 임종석, 자유한국당의 김무성 조훈현 유민봉 김성찬 김세연 등이 그 길을 택했다. 7선인 이해찬 민주당 대표와 6선인 김무성 한국당 의원의 불출마는 별로 감흥이 없다. 왜 아직도 하고 있냐고, 그만큼 했으면서 이것밖에 못하냐고 묻고 싶긴 한데, 그런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주목할 메시지는 나머지 불출마자의 선언문에 들어 있었다. 그것을 읽어보는 일은 지금의 정치판을 이해하는 데 꽤 도움이 될 듯하다.

최근의 불출마 선언은 “이게 정치냐”와 “그냥 접겠다”로 나눌 수 있다. 표창원 이철희 김세연 등이 전자에 속한다. 이런 게 정치라면 차라리 안 하겠다는 거였다. 표 의원은 “중립적인 시민 혹은 저를 지지했던 시민들에게서도 실망했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최악의 20대 국회에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정치의 한심한 꼴이 많이 부끄럽다. 해답을 주기는커녕 문제가 돼버린 정치는 공동체의 해악”이라며 출마를 포기했다. 꿈쩍 않던 야당에 파문을 던진 김 의원의 변도 다르지 않았다. “정파 간 극단적 대립구조 속에서 실망-좌절-혐오-경멸로 이어지는 정치혐오증에 시달려 왔음을 고백합니다.” 지금 한국 정치는 정치하는 사람조차 혐오스러워 할 만큼 끔찍한 대상이 됐다.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불출마 선언은 의외였는데, 핵심 측근이라는 이가 한 신문에 이런 말을 했다. “오늘 비가 오길래 결행했을 뿐이다.” 정치 행로가 날씨 따라 바뀌진 않을 테니 그만큼 많이 생각했고 시점만 남은 문제였다는 뜻일 테다. 국수(國手) 조훈현과 학자인 유민봉의 불출마 사유도 여의도 정치판에 미련을 거뒀다는 점에서 “비가 오길래”와 별 차이가 없었다. 마침 비가 내리기에 불출마 선언문을 인터넷에 올렸다는 임종석 측의 ‘쿨한’ 설명은 지금의 정치가 날씨 변화만큼의 무게도 갖지 못한다는 비유적 선언처럼 들렸다.

이런 게 정치냐 하면서 환멸을 드러낸 사람이나, 비가 오니까 하면서 결심을 굳힌 사람이나, 뜻을 펼치기에 현재의 정치판보다 더 나은 환경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는 점에선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들에게 행운을 빌어주고 싶지만 남겨질 여의도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힌다. 괜찮다 싶었던 이들이 이렇게 하나둘 떠나고 나면 쭉정이만 남을 텐데, 그럼 정치는 누가 하려나….

태원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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