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내어주는 계절이 왔다


본격 추위가 시작된 요즘 동네 버스정류장이 변하고 있다. 2~3년 전부터 선을 보였던 보온텐트가 다시 설치됐다. 보온텐트는 칼바람을 맞으며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을 위해 지자체가 마련한 바람막이 장치다.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는 기자 입장에서 보온텐트는 반갑다. 19일 아침 출근길, 영하로 떨어진 날씨 탓인지 사람들이 옹기종기 텐트 안에 모여들었다. 날씨도 맑아 햇살이 하나 가득 들어왔다. 따뜻한 온실이었다.

보온텐트는 지자체별로 모양이나 소재가 다양하다. 두꺼운 투명 비닐과 천막 재질로 만든 소형 텐트를 비롯해 철제 틀에 투명 아크릴, 유리를 끼워 제작한 하우스형 텐트도 있다. 말이 텐트지 사실 초소형 집과 같다. 이 집엔 이름도 있다. ‘온기충전소’ ‘영등포근포근방’ ‘서리풀 이글루’ 등 지자체별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동네 버스정류장엔 또 다른 장치가 최근 가동을 시작했다. 정류장 벤치에 열선을 깔아 만든 발열의자다. 엊그제 앉아봤는데 마치 자동차 열선 시트를 켠 느낌이랄까. 신비스러울 정도로 몸 전체가 따뜻해졌다. 앞으로 버스를 기다리다 감기 걸릴 일은 없을 듯싶다. 실시간으로 버스 도착 시각을 알려주고 바람을 막아주고 몸까지 따뜻하게 해주는 장치들이 있으니 말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버스 오기만 기다리다 번번이 감기에 걸린 옛날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얼마 전 경기도 안산에 취재 차 갔는데 그곳 버스정류장에도 발열의자가 설치돼 있었다. 베이지색 장판을 깔아놓은 온돌방 분위기랄까. 찜질방 저리가라였다. 안산 중앙역 버스정류장 발열의자엔 글자도 씌어있었다. ‘앉으면 따뜻해요.’ 둥그런 글씨가 그 모양만으로도 온기를 발하는 듯했다.

알고 보니 발열의자는 서울이나 경기도만 설치된 게 아니다. 이용 승객이 많은 전국 주요 도시 버스정류장엔 이미 장착이 완료됐다. 발열의자는 기온이 17도 이하로 내려가면 열선에 전기가 통하면서 온도가 37~40도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발열의자 역시 지자체별로 종류나 모양이 다른데, 주로 탄소섬유로 제작돼 누전이나 감전 우려가 없는 게 특징이다. 정류장 주변을 찬찬히 살펴보면 누전 차단기나 온도 조절기, 타이머 설정 기능까지 포함된 기계가 부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첨단 편의시설들이 등장하는 가운데 서울 서초구는 올겨울 강설·결빙으로 인한 낙상 사고위험이 큰 버스정류장 주변 보도에 전국 최초로 열선을 설치해 시범 운영한다고 한다. 보도에 열선을 설치하면 별도 제설 작업이 필요 없고 부식이나 환경오염도 없어 빙판길 안전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서초구는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다. 몇 년 전부터 횡단보도 주변에 대형 파라솔을 설치해 뜨거운 여름 햇볕을 막아줬고 버스정류장 보온텐트에 공기청정기를 설치해 미세먼지 대피소로도 활용했다. 지난주 수능을 앞두고는 버스정류장 발열의자에 ‘수험생 힘내세요’ 라는 문구를 표시했다 하니, 서초구가 추구하는 ‘생활 밀착형 행정’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내년은 또 어떻게 달라질지 벌써 즐거운 기대를 하게 된다.

4~5년 전 겨울이었다. 이런 편의시설이 아직 설치되기 전, 몇몇 버스정류장 벤치에 노란빛 쿠션이 놓여있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쿠션엔 끈이 달려 벤치에 묶여있었다. 방석 형태여서 여성이나 노인들이 이용했다. 어느 날인가는 한 여성이 쿠션을 꼭 안고 있는 장면도 목격했다. 당시 똑같은 쿠션이 몇 군데 정류장 벤치에 놓여있었는데, 누군가 타인을 위한 배려로 갖다 놓은 거라고 짐작이 됐다.

교회와 성도들의 봉사와 섬김 활동이 더 빛을 발하는 계절이 찾아왔다. 김치 담그기와 연탄 나르기, 반찬 만들기 등 이웃을 향한 손길도 바빠졌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 20:35)고 하신 예수의 말씀처럼 이 겨울이 우리 자신을 내어주는 계절이 됐으면 좋겠다. 사실 교회와 성도들은 이미 지자체보다 훨씬 앞서 ‘생활 밀착 사역’을 해오지 않았던가. 착한 행실이 꼭 드러날 필요는 없다. 하나님은 아실 것이라는 게 지난 2000년 믿음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다짐해본다. 일단 발열의자는 어르신이나 여성들에 내어주겠다고.

신상목 종교부 차장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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