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통천 물고기 가공사업소’를 시찰하고 있다. 19일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스위스 업체인 ABB그룹 로고(붉은 원)가 부착된 장비가 눈에 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에 따르면 모든 산업용 기계의 북한 판매가 금지돼 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가 없을 경우 비핵화 협상 재개는 어렵다는 주장을 연일 되풀이하고 있다. ‘선(先) 적대시 정책 철회, 후(後) 비핵화 협상’이라는 벼랑끝 전술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한·미 연합훈련 중단, 제재 완화 등을 비롯한 반대급부를 최대한 많이 얻어내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김영철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은 19일 담화문을 통해 “미국이 말끝마다 비핵화 협상에 대해 운운하고 있는데 조선반도(한반도) 핵 문제의 근원인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이 완전하고도 되돌릴 수 없게 철회되기 전에는 그에 대해 논의할 여지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안전과 발전을 저해하는 온갖 위협들이 깨끗이 제거된 다음에야 비핵화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도 같은 날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에서 “미국이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는 결단을 내리지 않는 한 조·미(북·미) 대화는 언제 가도 열리기 힘들게 돼 있다”고 했다.

이달 들어 북한은 김 위원장과 김 순회대사, 김계관 외무성 고문 명의의 담화에서 줄곧 미국에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요구해 왔다. 적대시 정책으로는 한·미 연합 군사훈련, 미군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 대북 제재 등이 거론된다. 이에 따라 한·미는 지난 17일 북한과의 협상 재개를 위해 연합 공중훈련인 ‘비질런트 에이스’를 연기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연합 군사훈련을 명분으로 제재 완화를 양보받으려는 북한의 전술이라고 분석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북한이 한·미동맹을 해체하기 어려운 미국의 입장을 고려해 제재 완화를 얻어내려 하고 있다”며 “석탄과 섬유 수출에 대한 제재를 3년 정도 유예받는 게 아니라 완전히 해제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미 언론은 미국이 북한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의 비핵화 실무협상을 앞두고 섬유·석탄 수출 제재를 36개월간 보류하는 방안을 준비했다고 보도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도 “북한이 연합훈련 연기만으로는 협상장에 나가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며 “자신들의 생존과 발전을 방해하는 제재를 해제하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도 스스로 정한 ‘연말 시한’이 다가오면서 시간에 쫓기는 모양새다. 북한은 최근 실무협상을 중재한 스웨덴에 “더 이상 조·미 대화 문제를 들고 다닐 필요는 없다”며 향후 협상이 스웨덴이 아닌 다른 곳에서 진행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김 순회대사는 “조·미 관계 개선에 관심이 있어서 그러는지 아니면 미국의 끈질긴 부탁을 받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당사자인 미국은 잠자코 있는데 스웨리예(스웨덴) 측이 곁가마 끓는 격으로 처신한다면 오히려 푼수 없는 행동으로 비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정한 연말 시한이 두 달도 남지 않아 조급한 것으로 보인다”며 “다음 협상이 스웨덴에서 열릴 가능성도 있지만 제3국의 중재를 거칠 필요 없는 판문점에서 협상을 열자고 미국에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미는 조만간 재개될 것으로 보이는 북·미 협상을 앞두고 공조를 강화하고 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를 워싱턴에서 18일(현지시간) 만나 북·미 협상 재개 문제 등을 논의했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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