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XR) 활동가 100여명이 지난 16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공항으로 들어가는 전용기 터미널 입구를 막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전용기가 항공사의 일반 비행기보다 이산화탄소를 20배 이상 배출한다며 반대 시위를 벌였다. EPA연합뉴스

미국 역사학자 하워드 진은 “역사적으로 가장 끔찍한 일들은 불복종이 아니라 복종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전쟁이나 나치의 대량학살, 노예제 따위는 누군가의 복종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에게 복종이란 능동적 추종 외에도 ‘수동적 무위’ 혹은 ‘비(非)불복종’을 포괄한다. 그래서 그는 생명이나 건강, 자유 등 근본적인 권리가 침해받을 때의 불복종은 정당하다고 봤다.

최근 세계 기후운동의 특징은 시민불복종이다. 출근시간대 도로를 점거하고, 동상에 핏빛 페인트를 뿌리며, 국회의사당에 난입해 나체시위를 벌인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재앙이 머지않았는데 권력자들은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들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끔찍할지도 모를 기후재앙을 막기 위해, 닿지 않는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위법을 저지른다.

XR, FDF, 툰베리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XR)은 스스로를 ‘국제 비폭력 시민불복종 활동단체’로 자처하는 기후운동 환경단체다. 이들은 ‘기후·생태계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각국 정부에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라고 촉구한다. 2018년 영국에서 설립돼 수십개 국가에 네트워크를 이루며 성장하고 있다.

XR은 세계 주요 도시의 도로 및 대중교통을 점거하고 의회에 난입하는 등 위법행위를 저지른다. 시민 생활에 직접 타격을 주는 전략으로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XR은 지난 10월 영국 런던과 미국 뉴욕,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등에서 대규모 시위를 했다. 런던 국회의사당과 트래펄가 광장 등 인파가 몰리는 장소를 점거·폐쇄했고, 뉴욕 월스트리트에서는 다이-인(Die-In·죽은 것처럼 드러눕는 시위 행동)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황소 동상에 가짜 피를 뿌렸다. 영국에서만 시위대 1828명이 체포되고 165명이 기소됐다.

지난 4월에는 출근시간대 지하철역을 점거하는 등 런던에서 1100명 이상, 그 외 국가에서 최소 400명 이상의 활동가가 체포됐다. 활동가 20여명은 영국 하원에 난입해 나체시위를 벌이며 “브렉시트는 진짜 문제가 아니다. 기후 변화에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소리쳤다. XR의 전략은 기후문제 시급성에 비해 각국 정부의 대책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데서 나온다. XR 로고는 원 안에 있는 모래시계로,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 않았다’는 뜻을 담았다.

미국 할리우드 배우 제인 폰다가 지난달 25일 미국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기후변화 방지 촉구 시위를 벌여 체포된 뒤 군중들을 향해 묶인 손을 들어 보이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미국에서는 ‘파이어 드릴 프라이데이’(Fire Drilled Friday·FDF)가 불복종 기후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 중심에 할리우드 배우 제인 폰다가 있다. 그는 매주 금요일 미국 워싱턴DC의 국회의사당을 무단 점거한 혐의로 수차례 경찰에 체포됐다. 그는 기후변화를 시한폭탄에 빗대 “시간이 별로 없고 정말 급한 일”이라며 정부의 즉각 대처를 촉구했다. 폰다는 이목을 끌기 위해 새빨간 코트를 입는다. 그를 상징하는 옷이자, 환경파괴를 막기 위해 마지막으로 산 옷이다. 폰다는 자신의 생일이자 금요일인 오는 12월 20일에도 의회에서 시위하고 체포될 것이라고 했다. FDF는 웹사이트에 체포 가이드도 공지한다. 이에 따르면 ‘사진이 있는 정부발행 신분증’과 ‘50달러’가 필요하다. FDF는 “50달러를 부담할 수 없다면 우리가 준비하겠다”고 한다.

폰다는 시민불복종 기후운동을 먼저 시작한 스웨덴 소녀 그레타 툰베리의 영향으로 매주 금요일 시위를 하고 있다. 툰베리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시민불복종 운동이라 생각해 지난해 8월부터 기후를 위한 등교거부 운동인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을 시작했다. 그는 매주 금요일 학교 대신 의회를 찾아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대책을 촉구했다. 홀로 시작한 운동은 전 세계로 확산돼 세계 각국 청소년들이 동참하고 있다.

그들이 ‘환경광신도’가 된 이유

과거 마지막 빙하 최대기에서 현대 간빙기에 도달하는 약 1만년간 기온은 약 4~5℃ 상승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 지난 100여년간 지구 평균기온은 약 1℃ 상승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산업혁명 이전보다 지구 평균기온이 2℃ 이상 상승할 경우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찜통(열실) 지구가 될 것이라고 본다.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산업혁명 이전보다 지구의 평균기온 상승을 2℃ 아래로 유지하고, 1.5℃를 넘지 않도록 합의한 이유다. 하지만 최근 국립기상과학원은 IPCC 6차 평가보고서 전망에서 21세기 말(2081~2100년)에는 전 지구의 평균 기온이 현재(1995~2014년)보다도 1.9~5.2℃ 오를 수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기후위기가 잘 와 닿지 않는다는 점이다. 산업화 이전 대비 2℃나 1.5℃ 이하로 기온 상승을 억제해야 한다거나,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를 450ppm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는 말로서는 일반인들이 이를 긴급한 문제로 인식하기 어렵다. 시민불복종은 이런 상황에서 관심을 유도하기 위한 전략이다.

시민들의 불편을 의도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XR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쳐 ‘환경광신도’로 불릴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잠재적 지지자들을 소외시킨다는 비판을 받는다. 경제적 비용도 막대하다. 영국 경찰은 그들의 지난 4월 런던 시위 대처에 약 750만 파운드(약 109억원), 지난 10월 시위 대처에는 2400만 파운드(약 361억원) 이상의 예산이 지출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XR는 “생태계와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사람들이 더 알아야 한다”고 반론한다. 누군가를 위험에 빠뜨리는 않는 범위 내에서 범죄도 때론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설문조사기관 유고브(YouGov)가 지난달 XR의 시위 전략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 결과 37%가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고 반대는 53%로 과반을 넘었다. 하지만 유고브가 지난 9월 성인들을 대상으로 자녀의 기후파업을 위한 하루 등교거부에 대한 의견을 묻는 조사에선 다른 결과가 나왔다. 응답자의 51%는 ‘응원한다’고 답했고 ‘말리겠다’는 30%에 그쳤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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