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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김영석] 머니볼과 딴판인 히어로즈


현대 유니콘스는 2000년대 초반 최강 구단이었다. 1998년과 2000년, 2003년과 2004년 네 차례 한국시리즈를 제패했다. 그러나 모그룹의 경영위기로 자금 지원이 끊겼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2006년부터 야구 기금을 쏟아부어 현대를 유지시켰다. 2007년 내내 인수 기업을 찾았지만 실패했다. 그해 겨울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라는 회사가 등장했다. 인수·합병(M&A) 전문 기업이다. 자본금 5000만원, 직원은 2명에 불과했다. 대표이사는 갓 마흔 살을 넘긴 이장석이었다.

이 대표는 2008년 ‘히어로즈’ 구단을 창단했다. ‘네이밍 마케팅’이라는 운영 방식을 제시했다. 히어로즈라는 팀명 앞에 스폰서 기업명을 붙이는 방식이다. 대부분 사기라고 비웃었지만 개인적으론 신선했다. 창단 초기 극심한 시행착오를 겪긴 했지만 우리담배, 넥센타이어, 키움증권을 차례로 메인 스폰서로 확보했다. 매년 100억원에 가까운 자금을 확보했다. 70여개 기업과는 서브 스폰서 계약을 맺었다. 강정호와 박병호를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진출시키며 막대한 이적료를 챙겼다.

2016년부터 흑자로 돌아섰다. 현재 키움 히어로즈의 가치는 1300억원을 웃돈다고 한다. 히어로즈 구단은 2013년 첫 포스트시즌 진출을 시작으로 가을야구 단골이 됐다. 올해는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차지했다. 성적과 경영 모두 자립에 성공한 셈이다. 이 대표는 영화 ‘머니볼’의 실제 모델이자 ‘저비용 고효율’ 야구의 상징인 빌리 빈 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단장에 빗대 ‘빌리 장석’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러나 이 대표의 성공에 감춰진 히어로즈의 민낯은 추악했다. 머니볼과는 딴판이었다. ‘선수 장사’를 했다. 현금과 선수를 맞바꿨다. KBO에 신고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10년 동안 131억여원을 몰래 받고 인센티브를 챙겼다. 매점 수익금과 광고 유치금 중 일부를 개인 계좌에 보관해 사적으로 사용했다. 이 대표는 지난해 2월 횡령과 배임 혐의로 구속됐다. KBO는 지난해 11월 이 대표에게 영구 실격 처분을 내렸다. 그러면서 이 대표가 어떠한 형태로든 KBO 리그에 관계자로 참여할 수 없고, 구단 경영에 관여해선 안 된다고 못 박았다.

그런데 1년여가 흐른 지금 그가 전면에 떠올랐다. 옥중 경영 논란이다. 한국시리즈 준우승 감독인 장정석 감독과의 재계약 과정에서다. 이 대표는 장 전 감독과 접견한 자리에서 재계약 의사를 전달했다. 이것만이 아니다. 부사장은 녹취록 논란에 빠져 있다. 사외 이사에 불과한 이사회 의장은 신임 감독 선임에 개입했다. 자기 사람 심기에만 골몰했다. 프로야구 첫 ‘네이밍 마케팅’ 구단의 신선함은 온데간데없고, 추악한 권력싸움만 난무하고 있다.

KBO가 진상조사 중이다. 이번 사안은 상벌위원회 차원에서 다룰 수준을 넘어섰다. 이 대표는 KBO의 제재 가이드라인을 무시했다. 이사회 의장은 월권행위로 프로야구계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 제대로 된 선을 긋지 못한다면 키움 사태는 매년 되풀이될 수 있다. 그런 만큼 단호해야 한다.

이 대표와 이사회 의장 등의 개입을 원천 차단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KBO 총재가 나서야 한다. KBO 규약 부칙을 보면 리그 발전과 권익을 위해 규약에 명시되지 않은 사항에도 총재가 제재를 가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강제 조치다. 또 규약 제2장 14조에는 응급조치 발동 권한도 있다. 단기적 해법으로 총재가 관선 이사와 같은 임시 집행부를 파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근본적으론 불투명한 구단 지배구조 자체를 뿌리부터 바꿀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 KBO의 조사 결과에 따라선 이사회 의결을 거쳐 키움 히어로즈의 회원 자격 박탈도 불사해야 한다. 9구단 체제라는 리그 파행도 각오해야 하는 사안이다. 이를 막기 위해 이른 시일 내 새로운 구단 주인을 찾는 일은 병행돼야 한다. KBO가 또다시 솜방망이 처벌로 어물쩍 넘어간다면 야구팬들의 거센 후폭풍에 직면할 건 불 보듯 뻔하다.

김영석 스포츠레저부 선임기자 ys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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