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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정진영] 사모들의 수다

헌신과 봉사라는 전통적 역할 경시해선 안 되지만 과도한 기대나 바람은 자제해야


칼럼 제목의 ‘사모’가 누구를 말하는지 쉽게 알아차렸을 것이다. 명색이 종교국장이 언급하는 사모라면, 당연히 교역자 배우자를 일컫는다고 생각하지 않겠나 싶다. 어릴 때부터 사모라는 말이 친숙했다. 주일학교 시절은 물론 어른이 돼서도 담임목사와 부목사, 전도사 등 목회자 사모를 가까이서 접했다. 아버지가 교사여서 어머니가 늘 ‘사모님’으로 불린 것도 이 단어에 익숙한 또 다른 이유다. 사모님 호칭때문에 불편했던 적도 있었다. 30대 중반, 출입처의 기자 가족동반 모임에 갔을 때다. 40대 후반의 남자 공보계장이 30대 초반인 아내에게 깍듯이 사모님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출입기자의 배우자니만큼 예우 차원에서 존칭을 썼겠지만 젊은 우리 부부는 영 부자연스러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사모 얘기를 꺼낸 것은 최근 국민일보 종교국이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한 한 콘텐츠를 말하기 위해서다. 지난 16일 공개된 ‘사모 몰랐수다’라는 제목의 8분56초짜리 이 프로그램은 23년 및 20년 경력의 목사 아내 두 명이 나누는 얘기다. 지난달 31일 1편에 이어 보름여 만에 내놓은 2편이다. 전편에 이어 2편 또한 유튜브에 올린 지 며칠 만에 종교 관련 콘텐츠치고는 꽤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서로 잘 아는 사이인 두 출연자는 묻고 답하는 ‘진실게임’ 형식을 통해 사모로서의 속내를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청바지와 하얀 원피스를 입고 교회에 오지 말라는 지적을 받았다거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하나님을 원망해본 적 있다고 고백하는가 하면 성도들이 사모의 헌신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아 아쉽다는 등을 얘기했다. 특히 부교역자 사모는 바퀴벌레처럼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며 힘들었던 때를 회상하는 한편 성도들이 우리 교회에 함께 계셔 줘 너무 좋다라는 말을 할 때는 울컥한다고도 했다. 영상을 보면서 짠하고 뭉클했으며, 재밌고 유쾌했다. 목회자 아내로서의 동역자가 아닌 한 남자의 배우자이자 엄마인 생활인으로서의 현실을 잘 이해할 수 있었고 많이 공감했다. 두 출연자의 연기 아닌 연기는 자연스러웠다. ‘엄근진’할 수 있는 소재를 가볍되 너무 수다스럽지 않게 술술 잘 풀었다. 솔직하게 말하면서도 선은 넘지 않으려는 사려 깊은 자세가 보였다.

목회자 사모로 살아간다는 것이 힘들다는 사실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신앙인과 생활인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들어야 하는 현실에서 상당수 사모들은 정신적, 육체적, 물질적, 신앙적 고민에 부대낀다. 목회자인 남편과의 갈등, 자녀교육의 난관을 절감하는 경우가 많고 미래에 대한 비전이 불투명해 우울감에 시달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

시대가 바뀌고 사회가 변하면 교회는 그 흐름에 맞추는 게 맞다. 사모의 역할도 마찬가지다. 헌신과 봉사라는 전통적 사모의 기능을 경시하지 않으면서도 사모에 대한 기대와 바람의 수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 서울 송파구의 오륜교회가 몇 년 전 개최한 사모들을 위한 행사 주제는 ‘응답하라 여고시절’이었다. 사모들이 얼마나 억눌려 있었으면 모임의 관통어가 가장 꿈이 많았던 여고시절을 회상하는 것이었을까라는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도발적이라 여길 수 있겠지만 사모 호칭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좋겠다. ‘사모(師母)’는 정확히 말하면 스승의 부인이다. 목회자를 영적 스승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생긴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목회자와 신도들 간 존경과 사랑이 배어있는 좋은 의미다. 그러나 통칭하는 건 문제가 있다. 예컨대 70, 80대 은퇴장로나 명예권사가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교역자 아내를 사모님으로 부르는 건 어색한 것 같다. 존중의 마음은 담으면서 상황에 따라서는 직분을 부르거나 아니면 또 다른 어울리는 명칭은 없는지 고민해봐야 겠다. 많은 경우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 사모라는 호명 자체가 당사자에게는 위계적·위압적일 수 있다. 당신은 사모니 그에 맞는 규범이나 틀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요구로 읽힐 수밖에 없다. 목회 현장에는 어느새 자기 주장이 분명하고 도발적인 발상이 낯설지 않은 80년대생인 밀레니얼 세대가 사모로 자리잡고 있다. 이들에게 베이비붐 세대의 사모상을 요구하는 건 무리다. 사모라는 이름에 대해 진지하게 숙의를 시작해 보는 것이 신세대 사모를 교회에 쉽게 뿌리내리게 하는 첫걸음일 수 있다.

정진영 종교국장 jy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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