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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고승욱] 대통령의 연말 기자회견을 기다린다


지난 19일 생중계된 ‘국민과의 대화’ 왜 했는지 의아
위로와 덕담이 대부분이고 기억 나는 내용 거의 없어
하루라도 빨리 기자회견 열어 국정 현안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 소상하게 밝혀야


지난 19일 생중계된 문재인 대통령 행사는 성격이 무엇인지 규정하기가 어렵다. 기자들을 만나지 않았으니 기자회견이나 기자간담회는 아니었던 것이 확실하다. 인터뷰어가 질문을 하고 답변에 따라 생각을 다시 묻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으니 인터뷰라고 할 수도 없다. 신청자 가운데 300명을 뽑아 화기애애한 시간을 가졌지만 팬미팅이라고 부르기도 어색하다. 대통령이 연예인도 아닌 데다 무엇을 해도 비난부터 하는 사람들에게 맞장구치는 것처럼 보여서 별로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사람들이 마음속 깊은 곳에 있었던 질문을 하면 대통령이 즉석에서 설명하는 자리였다는 청와대의 설명은 행사의 성격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청와대가 이미 대화의 시간이라고 정의했는데 굳이 어떤 성격이었는지를 다시 따지는 건 행사를 준비한 청와대의 안이함과 한가로움에 화가 났기 때문이다.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이 방송은 MBC를 포함해 9개 방송사가 생중계했고, 670만명이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하지만 방송이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대통령이 이 자리를 빌려 전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좀처럼 파악할 수 없었다. 나라 안팎으로 하루하루가 긴박한데 대통령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확인하는 질문도 없었다. 마지막 장면까지 끝나고 TV에서 광고가 나왔는데도 기억나는 대통령의 발언이 별로 없었다. 굳이 꼽자면 집값을 반드시 잡겠다는 것이었는데, 의지는 확인했지만 꼭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말할 때 송구하다고 사과한 것을 빼고는 “잘해보겠다” “잘해보자”는 덕담이 대부분이었다. 대통령이 열심히 사는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임기 후반기 시작과 함께 어렵게 마련한 자리에서 그것이 전부라니 곤혹스러웠다. 정부가 해결해야 할 과제들에 대한 질문을 받고, 치열하고 진솔하게 답한 뒤에 이런 자리가 마련됐다면 훨씬 더 많은 사람에게 박수를 받았을 것이다.

조국 전 장관이 국회에 기자들을 모아놓고 인사청문회를 대신하는 간담회를 열었을 때도 그랬다. 인사청문회라는 제도는 여러 나라에서 오랫동안 가다듬은 시스템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적지 않은 인적·물적 자원이 투입된다. 정부기관으로부터 감추려는 자료를 강제로 받아 전문가들의 검증을 거친 뒤 후보자에게 사실 여부를 확인한다. 그런 시스템을 한 달 남짓 취재한 기자들과의 간담회로 대체했다. 법으로 보장된 전문가의 작업을 그 분야에서 일하지 않는 초짜에게 맡긴 것이다. 이번 국민과의 대화도 그랬다. 권위에 고개를 숙이지 않고 무례하다고 느낄 정도로 캐물어야 하는 일을 공통된 현안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국민 패널에게 넘겼다.

물론 명분은 있다. 인사청문회에 나선 국회의원들이 본분을 잊고 시스템을 정치적으로 악용한 것처럼 과거 기자들은 질문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질문할 수 있는 자리를 독점하고, 왜곡하거나 과장하며 답변을 제멋대로 해석하는 일이 많았다. 몇몇 매체가 본분을 잊고 자리에 안주하며 배타적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폐해의 고리를 끊고 특권을 이용한 반칙을 중단시켜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 하지만 굳이 변명하자면 언론의 폐해는 언론 시스템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19세기에 활약했던 사실주의 문학의 선구자 오노레 드 발자크는 ‘저널리스트들(Les Journalistes)’이라는 책을 통해 날카로운 말로 언론의 잘못된 행태를 조롱했다(우리나라에는 기자의 본성에 관한 보고라는 제목으로 번역본이 나왔다). “요즘 언론은 힘없는 사람들을 향해서만 자유롭게 말한다” “프랑스가 당한 모욕적인 사건을 발굴하려는 언론의 노력은 이해할 수 없다” “언론을 죽이는 방법은 한 민족을 말살시키는 방법과 같다. 그들에게 자유를 주면 된다”라는 그의 말은 마치 21세기 대한민국을 향해 던지는 듯하다. 그렇지만 그는 평생 저널리스트라는 직업을 버리지 않았고, 프랑스 혁명기에는 공화주의를 표방하는 신문사의 편집국장으로 일하면서 직접 기사를 써 지면을 채웠다.

권력자는 귀찮고 모욕적이고, 심지어 반역적이라고 느끼더라도 언론 시스템을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물론 특권에 집착하고 반칙을 하는 언론매체의 잘못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신문사에서 일하는 많은 기자들이 그 생각에 절대적으로 동감한다. 그렇지만 권력자가 듣기 싫어하는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답이 나올 때까지 추궁하는 시스템을 우리 사회에서 폐기할 수는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거의 매일 언론을 비난하는 트윗을 하면서도 ‘무례한’ 기자들의 질문에 꼬박꼬박 답을 한다. 문 대통령이 하루라도 빨리 기자회견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친절한 미소와 예의 바른 손짓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너무 많다.

고승욱 편집국 부국장 swk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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