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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인으로 살아가는 도시의 풍경을 내놓다… 사진작가 구본창 개인전

“화가가 대상을 그리는 창작자라면 사진작가는 대상을 발견하는 사람”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한미사진미술관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한 구본창 작가. 뒤로 성남 모란시장의 어물전 미꾸라지를 찍은 작품(2019년)이 보인다. 미꾸라지의 역동적 움직임을 추상화처럼 포착했다. 손영옥 전문기자

백자 사진으로 대중에게 각인된 사진작가 구본창(66)씨가 서울 송파구 한미사진미술관에서 개인전을 하고 있다. 전시 제목은 ‘익명으로’라는 뜻의 ‘인코그니토(Incognito)’. 제목이 암시하듯이 익명인으로 살아가는 도시의 풍경을 내놓았다. 최근 전시장에서 작가를 만났다.

작품들은 그저 보이는 풍경이 아니라 그의 안목으로 ‘발견한’ 장면들이었다. 거리, 계단, 가판대, 쇼윈도 등 일상 속에서 무심코 스쳐 가는 장면에 그의 해석을 입혔다. 풍경 속에 개인의 역사, 사회의 역사를 중첩한 사진은 뇌리에 오래 머물렀다.

페루 리마의 공사장 현장을 찍은 사진(2016년)이다. 구본창 작가 제공

이를테면 거리에 포도주병이 깨져 유리 조각이 산산이 흩어져 있고, 수분이 날아간 포도주는 끈적거린다. 이 사진을 보고 누군가는 오늘 아침 신문에서 읽은 홍콩 시위 장면을 연상할 수 있겠다. 사진관에 걸린 가족사진을 찍은 작품도 있다. 한 여자 옆의 두 남자. 얼굴이 거의 안 나오게 찍고 보니 가부장 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성의 처지를 설명하는 페미니즘 코드로 읽힌다. 외국 미술관에서 본 추기경을 그린 회화를 찍기도 했다. 얼굴을 없애니 화려한 의복과 손에 낀 보석 반지가 도드라져 종교의 도덕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철거 현장의 앙상한 철근에 매달린 콘크리트 덩어리는 철거민의 절규를 시각화한 것 같기도 하다.

그는 “이번 전시는 1990년대 말부터 20년 가까이 찍어온 사진을 ‘익명으로’라는 주제 아래에 선별한 것”이라며 “화가가 대상을 그리는, 즉 창작자라면 사진작가인 우리는 대상을 발견하는 사람, 그걸 편집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대우실업에서 봉급생활자로 잠깐 취직하기도 했다. 예술가가 되고 싶어 6개월 만에 사표를 던졌다. 유학을 가 독일 함부르크 조형미술대학에서 사진 디자인을 전공했다. 왜 사진이었냐고 물었더니 “한 컷으로 모든 걸 결정하는 스릴이 있어 좋았다”고 했다.

1985년 귀국 후 처음 찍은 주제가 ‘긴 오후의 미행’으로 소개된 도시의 풍경이다. 유학에서 돌아오니 자유롭고 질서정연했던 독일과 다른 한국의 도시가 무척 낯설게 다가왔다. 민방위 훈련과 데모, 일상의 무질서 등 독재 정권하의 칙칙한 삶을 포착하고 싶어 도시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이번 작업은 그런 초기 작품 세계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후 한국적인 소재를 찾아 전통 탈 등을 주제별로 찍기 시작했다. 그를 대중적으로 유명하게 한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한 백자 연작이다. “우리가 ‘다이내믹 코리아’라고 하지만, 한국은 수수함의 나라에요. 다소곳한 문화적 요소를 백자에서 봤습니다. 중국의 화려함과 스케일, 일본의 정교함과는 다른 우리 문화의 미덕이지요.”

구체적인 계기도 있었다. 일본 여행 중 현지의 여성 잡지에서 조선백자를 소개한 기사를 본 것이다. 일본에선 주부들도 조선백자를 아는데 우리만 우리 것을 잘 모른다는 생각에 세계에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을 느꼈다.

그는 “백자가 갖는 한국적 미학을 나만의 방식으로 소화해 유물 사진 이상의 무언가를 끌어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해외에 소장된 백자를 찾아 파리 기메박물관, 런던 대영박물관,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등 세계 각지를 돌았다. 지금 백자를 찍거나 회화로 표현하는 작가는 10여명이나 된다. 그런 가운데 “백자 작가 1호”라는 자부심을 드러내는 작가는 “제가 찍은 백자는 숨을 쉰다. 여러 사람이 도자기를 찍지만 존재하는 듯, 존재하지 않는 듯 그 숨결까지 드러내는 이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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