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설의 문화산책] 원칙과 경계선이 있어야 사랑이다


교회의 젊은이들 가운데 남자성도를 ‘형제’로, 여자성도는 ‘자매’라고 부른다. 구원의 은혜를 체험하고 같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의미 때문이다. 신앙공동체의 아름다운 만남은 친구관계나 멘토(mentor) 관계로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성도들 중에는 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들처럼 친밀한 관계로 지내는 사람이 많다. 그리스도인 공동체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관계이다. 교회만큼 우정과 사랑의 관계로 돌봄과 양육이 이루어지는 곳도 흔하지 않다.

형제자매라고 불릴 만큼의 친밀한 관계는 두 사람의 맹약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관계는 형제자매와 다르지 않아서 형편과 사정을 헤아려주며, 어려움을 함께 나눌 수 있고, 서로에게 위로가 된다. 이 아름다운 관계가 변하지 않고 유지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영원한 것이 없고, 변하지 않는 관계가 되기란 쉽지 않다. 부모형제 간에도 원수처럼 원한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면 그렇다.

축구경기는 선수의 몸은 경기장 밖으로 나가도 공은 경기장 안에 있어야 한다. 반대로 농구경기는 공이 경기장 밖으로 나가도 선수의 몸은 경기장 안에 있어야 한다. 테니스 경기는 공이 라인에 조금이라도 걸치면 인플레이(in play)가 된다. 운동선수가 경기규칙을 엄격하게 지켜야 하는 것처럼 형제자매의 관계도 그렇다.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과 넘지 않아야 할 ‘경계선’이 있어야 한다. 원칙과 경계선이 없으면 아무리 친밀한 관계라도 소원해지기 쉽다.

친밀한 형제자매 관계가 되려면 사생활(privacy)을 존중하고 개인의 취향과 정서, 문화적인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때로는 금전거래로 신뢰를 잃게 되는 경우도 흔히 있다. 친밀한 관계라서 무례하게 말하고, 내 생각과 다른 요구를 하며, 지켜야 할 예절을 무시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도 용납할 수 있는 인격이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피를 나눈 가족은 친밀감과 동질성이 가장 강한 관계이다. 문제는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과도한 책임과 무례한 요구로 갈등하게 된다는 점이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밀착된 관계가 형성되면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한다. 나와 가까운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입장이기에 심정적으로 편을 들게 된다. 그래서 관계중심 사회에서는 공의와 정의를 실현하기가 어렵다. 친밀감과 동질성은 결속이 필요할 때 힘이 되지만 관계중심 사회의 약점이 되기도 한다.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이상적인 친구관계이다. 누구나 우정과 의리를 지킨 다윗과 요나단 같은 아름다운 관계를 원한다. 이들의 사랑과 우정은 환경과 상황을 초월하여 목숨을 버릴 수 있을 정도였다. 두 사람은 어떤 상황을 만나도 원칙과 경계선이 있는 사랑과 우정으로 어려움을 이겨냈다. 우리가 본받고 배워야 할 우정의 표본이요, 진정한 형제와 자매 사랑이다. 친밀할수록 원칙과 경계선이 있어야 예수의 가르침대로 “자기 목숨을 버릴 정도의 큰 사랑”(요 15:13)이 된다.

여주 중앙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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