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마지막 가는 길 이웃이 있어 따뜻했네…

구세군 위탁 운영 복지기관 ‘은평의마을’ 장례식에 가보니

노숙인 요양시설인 서울 은평의마을 가족들이 지난 19일 경기도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에서 김재석씨(가명)의 임종예배를 드리고 있다. 표창윤 사관이 예배를 인도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노숙인이었던 김재석(가명·57)씨는 지난 19일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장례식장 입관실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눈은 편히 감겨 있었고 입은 살짝 벌어져 있었다. 두 손은 고이 모아져 있었다. 수축한 몸이 앙상해 보였다.

가족도 화환도 없었다. 그의 죽음을 애도할 장례식장 방 하나도 없었다. 다만 김씨와 비슷한 처지의 또래 친구 6명이 모여 그의 시신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친구들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한 달에도 3~4번 맞이하는 친구들의 죽음이지만 엊그제까지 같이 지낸 이의 죽음을 묵도한다는 것은 매 순간 낯설기만 하다.

김씨는 생전 17년 동안 서울 은평의마을(시설장 홍봉식 사관)에서 지냈다. 이곳을 위탁 운영하는 대한구세군유지재단법인(이사장 김필수 사령관) 표창윤 사관은 누워 있는 김씨를 바라보며 “천국에서 편히 잠드소서”라며 입관 기도를 드렸다. 함께 기도한 친구들은 은평의마을 장례 봉사자들이다. 가족이 없다고 해서 가는 길까지 외로워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결성하게 됐다.

김씨의 시신을 태운 운구차가 경기도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으로 향했다. 시신이 모두 화장될 때까지 은평의마을 입소자들은 함께 모여 임종예배를 드렸다. 표 사관은 “세상에서의 삶은 나그네였지만 우리 소망은 하늘나라에 있는 줄로 안다”며 “아픔 없는 영원한 천국에서 기쁨과 즐거움의 잔치에 참여할 것으로 믿는다”고 위로했다.

은평의마을 가족들이 김씨의 유골함을 들고 화장터를 나오고 있는 모습. 강민석 선임기자

고인을 추억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김씨와 1년간 같은 방을 썼다는 이모(59)씨는 “김씨의 아버지는 대전 현충원에 모신 국가 유공자”라며 “김씨가 그런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했다”고 기억했다. 김씨와 4년을 함께 지냈다는 정철수(65)씨는 “우린 전부 외로운 사람들뿐”이라고 말했다. 가는 길까지 가족이나 친지 하나 찾지 않았으니 얼마나 외롭겠냐는 말이다. 은평의마을 식구들이라도 대신 추모해 줄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김씨는 내성적인 사람이었지만 치매가 있는 은평의마을 식구와 함께 외출을 다녀올 만큼 다정다감했다. 빵과 과자 등 간식이 있으면 곁에 있는 동료들과도 곧잘 나눴다. 뚜렷한 직업이 없던 김씨는 17년 전 은평의마을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축구를 즐겼던 그는 큰형같이 단체 활동에 솔선수범했다. 기관 내 희망일터 작업장에서 쇼핑백도 열심히 만들었다.

그러던 그가 지난해 봄 배가 아프다고 했다. 1년 넘는 항암 치료를 받았지만 차도가 없었다. 김씨는 속이 메슥거린다며 얼큰한 찌개가 먹고 싶다고 송소민(35) 은평의마을 팀장을 졸랐다. 그럴 때마다 송 팀장은 “어르신 꼭 나으셔서 같이 낚시 가요”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됐다.

은평의마을은 서울 은평구 구산근린공원 인근 총면적 5만㎡의 넓은 땅에 들어서 있다. 서울 지역 최대 노숙인 요양시설이다. 구세군은 은평의마을 외에도 중증장애인시설 평화로운집, 정신요양시설 은혜로운집을 위탁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함께 지내는 이가 1100명에 이른다. 고령이나 암 등 질환으로 건강이 나빠진 노숙인이나 저소득 어르신이 마지막으로 찾는 곳이다.

서울 도심에서 쓰러진 노숙인을 찾아보기 힘든 이유가 은평의마을 때문일지도 모른다. 은평의마을에선 이들의 숙식은 물론 치료와 자활까지 이뤄진다. 예배를 통해 지나온 과거의 아픔을 잊고 도예 공방 등 자활 사업으로 새 삶을 향한 꿈을 갖게 한다.

정부 보조금을 제외하고도 1년에 수십억원이 드는 이곳의 위탁 운영에 구세군이 뛰어든 까닭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다. 한 달 3~4명이 은평의마을에서 생을 마감한다. 무연고자 또는 가족이 인계를 포기할 경우 은평의마을 가족이 고인을 위한 장례를 열어주고 있다. 별세한 이에게는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며 봉사자인 생활인들에게는 향후 있을 죽음에 대한 위로와 안정을 준다.

표 사관은 “한 분 한 분을 구원해 천국으로 편히 가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구세군이 맡은 사명”이라며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도 하나님의 사랑은 전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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