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밥 피어스] 우물 100개 팔 때까지 ‘한 우물’만 팔겁니다

<3> ‘우물통장’으로 세계 오지에 식수대 지원, 방영기·박진은 모녀

방영기(왼쪽) 박진은씨 모녀가 지난 20일 경기도 화성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 앞에서 월드비전을 통해 아프리카 등지에 설치한 식수대 사진을 든 채 미소 짓고 있다. 화성=강민석 선임기자

경기도 화성 괘랑리. 투박한 공장과 중장비들 틈에 영화 세트장을 떠올리게 하는 독특한 건물이 있는 곳으로 최근 ‘인싸’(인사이더의 줄임말)들에게 알려진 동네다.

‘이 시대의 밥 피어스’ 세 번째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 지난 20일 이곳을 찾았다. 영화 ‘해리 포터’ 속 마법사들이 살고 있을 듯한 ‘담쟁이넝쿨 집’ 앞에선 추억을 남기려는 방문객들이 연신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그 옆으로 커다란 공장을 개조한 2층짜리 건물에 들어서자 이곳 운영자 박진은(37)씨와 어머니 방영기(62) 집사가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어우러진 레스토랑 한편에서 두 사람은 따뜻한 동화 같은 얘길 들려줬다.

“우물을 파기로 했어요. 아이들을 위한 우물을요.”

방 집사가 말한 ‘우물 파기’는 깨끗한 물이 없어 고통받는 지역에 식수 펌프와 식수대를 설치하는 일이다. 엄마와 딸은 2013년 잠비아를 시작으로 우간다 르완다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등 6개 나라에 지난해까지 식수대 8기를 설치해 주민들에게 ‘생명의 물’을 공급하고 있다. 지난달 케냐에도 식수대를 설치하기로 하면서 후원 누계액 1억원을 넘어섰다.

방영기 박진은씨 모녀의 후원으로 지난해 캄보디아 상큼트머이 지역에 설치된 식수대 앞에서 일가족이 물을 담으며 행복해하는 모습. 월드비전 제공

모녀는 매년 12월 서울 여의도로 특별한 나들이에 나선다. 월드비전(회장 양호승) 본부를 방문해 우물이 필요한 곳을 찾기 위해서다. 박씨는 “월드비전에 준비된 세계 각지의 자료를 검토하며 어머니와 함께 지원할 곳을 결정할 때마다 뿌듯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했다.

박씨가 하나님께 했던 약속이 우물 파기의 시작점이었다. 그는 미술 전공을 살려 9년 전 촬영용 스튜디오 사업에 뛰어들었다. 스튜디오의 이름은 제이원(J.one). 예수님은 유일한 분(Jesus Christ is the only one)이란 뜻이다. 이때 십일조를 빼놓지 않으며 수익의 일부는 이웃을 섬기는 일에 정기적으로 쓰겠다고 하나님께 약속했다. 이를 위해 두 개의 통장을 만들었다. 하나는 ‘십일조통장’ 다른 하나는 ‘섬김과 나눔을 위한 통장’이었다.

“처음 몇 개월은 월세도 제대로 내지 못할 정도로 운영이 어려웠어요. 하지만 하나님만 의지하기로 마음먹고 주어진 역할에 집중하자 조금씩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죠.”

얼마 후 감각적인 촬영 공간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문의가 쇄도했다. 스튜디오는 전지현 소지섭 등 톱스타들이 등장하는 광고의 배경으로 사용됐다. 두 개의 통장에도 귀한 열매가 쌓였다. 십일조통장의 열매는 매달 수확한 대로 교회를 향했지만, 문제는 나눔통장이었다. 사용처를 찾지 못해 고민하고 있을 때 박씨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장면이 나타났다. 걸그룹 소녀시대 멤버들이 세계 각지에 우물을 파고 지역 주민들을 돕는 모습이었다. 때마침 방 집사도 신문 기사를 통해 투명하게 운영되는 월드비전의 활동에 관심이 늘어가던 참이었다.

결심이 선 모녀는 거침없이 행동에 나섰다. 은행에 들러 식수대 설치에 필요한 금액을 수표로 인출하고 월드비전으로 향했다. 그렇게 잠비아 뭄브와 마을에 주민들을 위한 식수대가 설치됐다. 방 집사는 “뭄브와 마을 아이들이 깨끗한 물을 마시며 웃는 사진을 보면서 한참을 울었다”며 “우리가 기뻐 웃을 때 하나님이 어떤 마음이실지 조금은 이해가 됐다”고 말했다.

르완다 무수바티 지역에 설치된 식수대에서 어린이가 손에 물을 적시는 모습. 월드비전 제공

모녀가 시작한 나눔은 가족의 뜻깊은 행사가 됐다. 지금은 박씨의 남편과 세 살배기 딸도 동참한다. 2년 전 르완다 무수바티 마을에 설치된 식수대 앞 현판엔 ‘물과 사랑이 이 지역에 강물처럼 흐르기를’이란 문구와 함께 박씨의 딸 이름이 새겨졌다. 나눔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에 대해 방 집사는 “신앙”이라고 간결하게 답했다. 그러면서 “사람이 욕심을 내려놓는 건 결코 쉽지 않지만 나를 비울 때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걸 4대째 신앙 유산으로 가슴에 새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식수대 외에 다른 후원처가 눈에 들어오진 않았을까. 방 집사는 “솔직히 그런 마음이 없진 않았지만, 딸에게 ‘우린 하나님이 처음 주신 마음대로 한 우물만 파자’고 했다”며 웃었다.

지난해엔 카페 겸 레스토랑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이번엔 ‘예수님은 사랑입니다(Jesus is love)’란 의미를 담아 ‘제이엘(Jeiel)’로 이름을 짓고 지번(627-4)을 뒤에 붙였다. 모녀는 인터뷰 내내 “크리스천으로서 당연한 삶을 사는 것”이라며 쑥스러워했다. 하지만 나눔을 향한 소망을 당차게 전할 땐 부끄러움도 주저도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 가족의 우물통장이 우물 100개를 팔 때까지 깨끗한 물이 필요한 곳을 찾고 또 찾을 겁니다.”

화성=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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