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공동 기자회견을 갖기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터키의 전신 오스만제국에 의해 자행된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사건을 ‘민족 말살’(genocide·제노사이드)로 공식 인정하는 내용의 미국 의회 결의안을 백악관이 앞장서 막은 것으로 드러났다.

미 온라인매체 악시오스는 25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이 백악관 지시에 따라 지난 13일 하원의 ‘오스만제국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 인정 결의안’을 상원에서 저지시켰다고 보도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워싱턴을 방문해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날이었다.

그레이엄 의원은 당시 백악관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을 만나 터키의 시리아 침공 및 쿠르드족 공격을 비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그는 상원에선 하원에서 통과된 터키 압박용 결의안에 반대했다. 이 결의안은 하원이 터키의 시리아 침공에 대한 항의의 의미에서 통과시킨 것으로 에르도안 대통령을 격분하게 만든 조치였다. 오스만제국이 1915년부터 10년간 소수민족 아르메니아인을 100만명 이상 학살했던 이 사건은 터키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역사 문제다.

그레이엄 의원의 반대는 하원에서 통과된 결의안을 상원에서도 통과시키려 했던 밥 메넨데즈 민주당 상원의원 등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상원 규정에 따르면 상원의원 1명의 반대만으로도 결의안 표결을 저지할 수 있다. 그레이엄 의원은 악시오스와의 통화에서 백악관 요청에 따라 결의안 통과를 막았다고 인정했다. 그는 “백악관 입법 담당 관료가 결의안에 반대해 줄 수 있느냐고 물어 알겠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미 상원은 지난 21일 결의안 통과를 재추진했지만 이번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또 다른 측근인 데이비드 퍼듀 상원의원이 상정에 반대해 투표가 무산됐다. 역시 백악관의 요청을 받은 그는 “결의안이 통과될 경우 터키 등 동맹국과의 민감한 협상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반대했다”고 설명했다.

악시오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상·하원을 모두 통과한 홍콩인권법안에 서명하는 일도 꺼리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참모들에게 우선 미·중 무역협상을 성사시키고 싶다는 의사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역협상 성사 전까지는 홍콩 문제로 중국 정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겠다는 의미다. 다만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도 상·하원이 법안을 재상정해 각각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받으면 거부권을 무효화시킬 수 있어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홍콩인권법안에 서명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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