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미국 해군특전단(네이비실) 대원과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복귀 지시에 맞섰던 리처드 스펜서(사진) 해군장관이 결국 경질됐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전쟁범죄를 저지른 군인을 보수층 유권자들의 입맛에 맞게 ‘전쟁 영웅’으로 포장하려다 해군 지휘부가 반발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보복성 인사 조치를 내린 것이다.

조너선 호프먼 국방부 대변인은 24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스펜서 장관을 경질했다고 발표했다. 호프먼 대변인은 경질 이유에 대해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스펜서 장관이 네이비실 문제와 관련해 그동안 백악관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솔직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몇 시간 뒤 트럼프 대통령도 트위터를 통해 “에스퍼 장관이 스펜서 장관에게 경질을 통보했다”며 “후임으로는 해군 제독이자 주노르웨이 대사인 케네스 브레이드웨이트를 임명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과 해군 충돌 사태의 발단은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논란의 주인공인 네이비실 소속 애드워드 갤러거 일등중사는 당시 이슬람국가(IS) 퇴치 작전 중 포로로 잡힌 IS 비무장 소년병을 사냥용 칼로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지난해 9월 군검찰에 체포됐다. 포로는 17세에 불과했다. 그는 시신의 머리채를 잡고 셀카를 찍어 ‘시체 셀카’ 논란도 불러일으켰다. 훈장을 두 차례나 받고 10여년간 중동 전장을 누빈 군인이 한순간에 전쟁범죄자로 전락한 것이다.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던 갤러거 중사의 사연은 트럼프 대통령과 일부 공화당 의원들이 그를 적극 옹호하면서 극적으로 반전됐다. 지지층을 의식해 ‘갤러거는 무죄’라는 논리를 편 것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갤러거 중사에게 개인변호사까지 붙여 주며 “그가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내가 직권으로 사면하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진영의 적극적 지원 속에 갤러거 중사는 지난 7월 군법원에서 대부분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시체와 셀카를 찍는 등 군 명예를 실추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만 4개월 구금과 하사 강등 처분이 내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마저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지난 15일 해군에 갤러거를 다시 중사로 복권시키라는 지시를 내렸다. 해군 측에서 반발하자 그는 21일 트위터를 통해 “해군은 갤러거에게 삼지창핀(네이비실의 상징)을 빼앗지 못할 것이다. 이 사건은 처음부터 아주 형편없이 처리됐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군의 규율과 군법에 지속적으로 간섭하자 스펜서 장관은 “트윗글은 대통령의 공식 명령이 아니다”며 징계를 강행한다고 맞섰다. 하지만 그는 뒤로는 백악관에 직접 접촉해 “갤러거가 네이비실에서 은퇴할 수 있도록 할 테니 계급 강등 처분은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이 실제 영향을 미친 것이다. 에스퍼 장관은 스펜서 장관이 자신을 거치지 않고 백악관과 딜을 시도한 것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사태는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스러운 요구를 그나마 반영해주려고 애쓰는 일이 행정부 차원에서 반복되면서 벌어진 참사”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정책, 법 집행 그리고 군사 문제에 이르기까지 과거 행정부가 전통적으로 지켜왔던 선을 얼마나 무모하게 뛰어넘을 준비가 돼 있는지 잘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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