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누군가 나에게 “당신은 이 동네에서 제일 세고요, 제일 강하고, 제일 훌륭하고, 제일 장해요”라고 말해준다면, 또 “당신은 행복해질 자격이 충분히 차고 넘치는 사람이에요”라고 치켜세워주며 “오늘 기분 빡친다 싶으면 혼자 쭈그러들지 말고 냅다 나한테 달려오면 된다고요”라고 말해준다면 어떤 기분일까. 왠지 없던 힘이 불쑥불쑥 솟을 것 같고 용기가 날 것 같다. 이 말을 퇴근 후 남편과 아이들에게 했더니 모두 광대승천이다.

사실 이 말은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KBS 2TV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주인공 동백(공효진)을 사랑하는 용식(강하늘)의 대사이다. 용식의 말은 동백뿐 아니라 이 시대의 고개 숙인 누군가를 향해 “당신은 충분히 가치 있는 존재예요”라는 응원가 같았다.

가장 울컥했던 대목은 어려서는 고아로, 나이 들어서는 미혼모로 살았다며 고개 숙인 동백에게 용식이 “약한 척하지 말라”며 한 말이다. “고아에 미혼모가 필구를 혼자서 저렇게 잘 키우고 자영업 사장님까지 됐어요. 남 탓 안 하고요. 치사하게 안 살고 그 와중에 남보다도 더 착하고 더 착실하게 그렇게 살아내는 거 그거 다들 우러러보고 손뼉 쳐줘야 될 거 아니냐고요. 남들 같았으면요. 진작에 나자빠졌어요. 근데 누가 너를 욕해요? 동백씨 이 동네에서 제일로 세고요 제일로 강하고 제일로 훌륭하고 제일로 장해요.” 이런 말을 듣는 남편과 아내들은 힘이 솟을 것이다. 학업이나 취업 문제로 고개 숙였던 자녀들은 새 힘을 낼 것이다. 척박한 이 땅에 꽃을 다시 피울 힘이 날 것이다.

현실적으로 편견과 선입견이 우리를 힘들게 할 때가 많다. 금수저와 흙수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배운 자와 못 배운 자, 세련됨과 촌스러움, 도시와 농어촌 등으로 나뉜 갖가지 편견과 선입견으로 서로를 힘들게 한다. 그리고 타인의 편견 속에서 누구는 잡초나 독초로 살고 누구는 사람들 속에 꽃으로 살아간다.

사람에겐 사람을 망가뜨릴 수 있는 날카로운 눈과 입이 있지만, 사람을 품어주고 쓰다듬어 줄 수 있는 또 다른 눈과 입이 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기적을 만드신다. 어떤 말을 듣고 자라느냐에 따라 독초나 잡초가 되기도 하고 향기 나는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난다.

자신을 대놓고 무시하는 사람들의 말, 자신의 기름때 낀 손톱을 경멸하고 땀 자국을 멸시하는 말이 흥식(이규성)을 연쇄살인범 까불이란 괴물로 만들었다. 술집을 운영하는 엄마 탓에 어릴 적부터 편견 속에 자란 향미(손담비)는 질투와 열등감, 분노로 얼룩진 삶을 살았다. 동백이 역시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환경 속에서 살았다.

그러나 동백은 세상의 불친절 속에 살았어도 다정했다. 제대로 대접받아본 적 없어도 남을 대접할 줄 알았다. “소심한 게 왜 나빠… 그래도 소심한 사람은 남한테 상처는 안 줘.” “사람들이 사는 게 징글징글할 때 술 마시러 오잖아요. 그니까 나는 웬만하면은… 사람들한테 다정하고 싶어요. 다정은 공짠데… 서로 좀 친절해도 되잖아요.”

이런 동백에게 보낸 용식의 시선은 온기로 가득했다. 언제나 조건 없고 제한 없는 사랑과 응원을 쏟아부었다. 그 사랑이 결국 남 눈치 보며 웅크리고 살던 동백이 세상의 편견을 까부수고 당당한 목소리를 내게 했다. 사람을 변화시킨 기적을 만들었다.

동백을 꽃 피우게 한 힘은 무엇보다 “동백씨는 이 동네에서 제일 세고요, 제일 강하고, 제일 훌륭하고, 제일 장해요”란 인정이었다. 그래서 “사람이 사람에게 기적이 될 수 있을까”란 질문에 우린 자신 있게 “예”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말의 온기’다. 선한 말은 힘이 세서 더 선한 것을 불러온다. 깡깡 얼어붙은 마음도 녹인다.

악성 댓글에 시달리는 연예인은 “누군가 날 싫어한다는 것에는 익숙해질 수 없는 것 같다” “때론 억울하고 속상하다”고 말한다. 마음의 상처는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느끼는 외상만큼 아픈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는 괜찮은 줄 안다. 말의 상처는 외상만큼이나 깊고 긴 회복 기간이 필요하다. 우린 모두가 꽃이다. 타인에 관한 관심과 사랑, 공감, 연민이 양분이 된다면 마음에 동백꽃을 피울 수 있다. 겨울에 피는 그 붉고 예쁜 동백의 꽃말은 ‘그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이다. 꽃말이 주는 위로가 크다. 내 편이 필요한 우리 마음에 동백꽃이 피어나길 바란다.

이지현 뉴콘텐츠부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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