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건 설교에… 팔짱 끼고 예배보던 성도들 겸손모드로

안호성 목사의 사자처럼 담대하라 <14>

2010년 3월 울산온양순복음교회 주일 예배모습. 장년 성도가 불어나면서 예배당에 앉을 자리가 없어 플라스틱 의자까지 준비했다.

아이들의 수가 늘어나더니 어른 수도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울산이나 부산에 있는 대형교회 출석 성도들이 찾았다. 2006년부터 그들은 별생각 없이 집 근처 울산온양순복음교회에 새벽기도나 수요예배를 드리려고 방문했다. 그래서 패턴이 비슷했다. 뒷자리에 앉아 팔짱을 끼고 면접 보는 분위기로 예배를 평가했다.

도시 대형교회 다니는 성도 입장에서 농촌의 작은 개척교회가 얼마나 우스웠을까. 게다가 장로교단 텃밭에 최초로 세워진 순복음교회였다. 하지만 나는 목숨 걸고 매일 설교를 준비했고 강단에서 사자처럼 말씀을 토해냈다. 서서히 팔짱이 풀리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겸손하게 두 손을 무릎에 모으고 눈물을 흘렸다. 이들은 1년이 지나자 대부분 우리교회에 등록했다.

가족 전체를 데려와 등록했던 신앙의 5대째인 장로교단 가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어느 날 가장인 안수집사님이 내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는 게 아닌가. “목사님, 말씀 하나 보고 여기로 왔습니다. 거둬주십시오.” 그렇게 그 가정은 교인이 됐다.

신앙의 4~5대째 뿌리 깊은 신앙의 가정이 하나둘씩 몰려들었다. 2008년 6월 마지막 주일, 개척한 지 정확하게 4년 반 만에 처음으로 예배 인원이 100명을 넘어섰다. 132㎡(40평)도 안 되는 예배당이 점점 좁아지기 시작했다. 파란 플라스틱 의자까지 가져다가 통로에 앉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아버지가 목회하실 때 봤던 고질적 문제가 울산온양순복음교회에도 똑같이 스멀스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순간 각자 생활 수준과 신앙코드에 맞는 사람끼리 패거리를 이뤘다. 자신이 이전에 해오던 신앙의 익숙한 행위와 습관을 타인에게 요구하기 시작했다.

“저는 기도시간에 조용히 기도했으면 좋겠어요.” “어머, 찬양 부를 때 손뼉 치는 게 촌스러워요.” “새벽기도 시간에 아무개 집사님의 통성기도 소리가 거슬려요.” “제발 품격 떨어지게 방언으로 기도 좀 안 했으면 좋겠어요.”

정작 나를 화나게 했던 것은 다른 데 있었다. 그들이 가난하고 못 배우고 신앙생활이 좀 세련되지 못하거나 인격적으로 좀 성숙하지 못한 성도를 소외시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숫자상으로는 늘었지만 진정한 교회의 모습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퇴보했다.

2008년 7월 어느 주일 선포를 해버렸다. “우리 교회는 이제부터 문을 닫습니다. 이건 교회가 아닙니다. OO집사님만 남고 다 나가세요.” 그 집사님은 우리 교회에서 가장 가난하고 어렵게 사는 분이었다. 술주정뱅이 남편으로부터 폭력을 밥 먹듯 당하는 여집사님이었다.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다가 진지한 눈빛과 비장함이 느껴지자 성도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집사님의 울부짖는 기도 소리를 싫어하며 눈치 주던 한 부자 집사를 조용히 불렀다.

“집사님, 이 교회에 남아서 계속 자기 위주로 신앙생활 하고 싶으세요? 교회와 예배를 좌지우지하고 싶은 교만과 유혹이 생긴다면 다른 교회로 가십시오. 다른 성도를 정죄하고 미워하는 범죄를 계속 저지를 것 같으면 떠나도 상관없습니다. 집사님은 어느 교회에 가서도 환영받고 존중받을 수 있지만, 그 집사님은 여기가 사랑받을 수 있는 마지막 자리입니다. 그러니 집사님이 나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주일 교회 문을 잠가 버렸다. 그러자 성도들이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 회개하기 시작했다. “목사님, 용서해 주십시오.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교회엔 텃세나 패거리 모임이 없어졌다. 아니 용납되지 않는다. 빠른 성장보다 바른 성장을 추구하자는 목회 가치가 정착된 것이다.

신앙생활과 예배에는 여러 가지 형태와 모습이 있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다름의 문제다. 누군가는 신앙이 생존의 치열한 싸움이다. 매일 남편의 술주정과 폭력이 두려워 맨발로 어린아이를 들쳐 엎고 교회로 도망쳐 눈물로 밤을 새우고 새벽기도를 맞이한다. 그 절망의 끝자락에서 하나님 아니면, 그 위로와 공급하시는 은혜가 없으면 하루도 살 수 없는 이들이 있다. 반면 몇 대째 신앙생활을 이어가며 축복을 받고 ‘교회 안 간다’고 떼쓰면 할머니와 엄마가 업어서 예배의 자리로 옮겨주던 이들이 있다. 이 두 부류가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안호성 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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