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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김준동] 학생들의 분노가 들리지 않는가

2년 반 동안 10여차례 바뀐 교육정책… 일관성 훼손하는 폭거에 학생은 ‘실험 쥐’ 전락


#문재인정부 출범 3개월째인 2017년 8월. 당시 교육부 장관이던 김상곤 현 경기도교육연구원장은 문 대통령의 핵심 교육 공약인 수능 절대평가 전환 계획을 1년 유예한다고 발표한다. ‘일부 과목 절대평가냐, 전 과목 절대평가냐’를 놓고 격론이 거세지자 초유의 1년 유예라는 카드를 내놓은 것이다. 문 정부의 교육 정책을 입안한 김 장관은 수능 절대평가 제도를 추진했다. 수능을 9개 등급의 절대평가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반대 여론은 높아졌고 이낙연 국무총리까지 “(수능을 절대평가로 바꾸면) 교육현장에서 혼란과 불신이 늘어날 것”이라며 제동을 걸었다. 그러자 김 장관은 취임 한 달도 안 돼 수능 절대평가 방안을 휴짓조각으로 만들어버렸다.

#2018년 1월. 유치원·어린이집 방과 후 영어수업 금지 정책이 표류한다. 3월 신학기부터 적용하려 했으나 원점에서 재검토한 뒤 2019년 초 확정안을 다시 발표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유치원·어린이집 영어수업 금지 방침을 밝힌 지 3주 사이에 ‘미확정→금지 통보→유예’로 입장을 바꿨다. 역시 빗발치는 비판 여론을 견디지 못한 백기투항이었다.

#2018년 3월. 교육 당국의 어이없는 정책이 대학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교육부는 수능을 강화하겠다며 주요 대학에 정시 확대를 요구했다. 그러면서 수능 비중을 줄이겠다며 수시에서 그나마 객관적 평가 지표인 수능 최저기준을 없애겠다는 방침도 함께 내놨다. 한쪽에선 수능을 강화하고 한쪽에선 약화시키는 상충된 정책을 들고나온 것이다.

#2018년 4월. 2022학년도 대입개편을 국가교육회의에 넘긴다는 교육 당국의 발표가 이어진다. 우여곡절 끝에 마련된 개편안 결정 구조는 교육부→국가교육회의→대입제도개편 특별위원회→공론화위원회→시민참여단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다단계 하청으로 이뤄졌다. 수백 가지 조합이 가능한 선택지만 주고 사실상 공론화위가 여론을 통해 최종안을 확정하는 방식이었다. 교육부의 ‘결정 장애’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2019년 10월. 문 대통령은 2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대입 정시 비율의 상향을 포함한 입시 개편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입시부정 의혹 이후 공정과 정의를 외치는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정권과 당파를 넘어선 교육정책을 만들기 위해 설립한 국가교육위원회와 주무 부처인 교육부를 패싱한 대통령의 일방적 입장 표명이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전날 국회 국정감사에서 대입제도 개선에 대해 “정시 확대는 없다”고 말한 지 하루 만이다.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지 2년 반째인 2019년 11월. 유 장관은 7일 “자사고, 외고, 국제고가 취지와 다르게 고교 서열화와 사교육 심화 등 불평등을 유발한다”며 “2025년부터 모두 일반고로 전환하겠다”고 밝힌다. 불과 두 달 전까지 자사고와 특목고는 재지정 평가를 통해 단계적으로 전환하겠다던 방침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조국 사태로 대입 불공정 논란이 불거지자 여론 전환용으로 일괄폐지로 방향을 급선회한 셈이다.

정치적 상황 변화에 따라 대한민국의 교육정책은 덩달아 춤을 춰 왔다. 입시제도가 1945년 광복 이후 큰 틀만 무려 20여 차례나 변경된 것만 봐도 여실히 알 수 있다. 평균 4년도 버티지 못한 셈이다. 위에서 나열한 사례를 보듯 문재인정부들어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집권 30개월 동안 대선 공약 등에서 천명한 교육 정책을 철회하거나 연기한 것만 10가지가 넘는다. 백년대계인 교육정책을 사회적 합의도 없이 손바닥 뒤집듯 바꾼다. 대통령 한마디에 오락가락한다. 시행령에 의한 제도 개선은 장기적으로 지속할 수 없고, 정권이 바뀌면 바로 바뀐다. 어떤 정권이 와도 바꿀 수 없게 만들겠다는 교육 수장의 말은 그래서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교육 강국인 핀란드의 교육 개혁을 20여년간 이끌었던 에르키 아호 전 국가교육청장은 이렇게 고언한다. “교육 개혁은 단기간에 완성되지 않는다. 교육 시스템은 철저한 준비를 통해 점진적이고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오늘도 대학입시 제도 개편 방안이 발표된다. 지난해 국민 공론화까지 거쳐서 ‘정시 30% 이상’ 등이 포함된 2022학년도 대입 개편안을 마련했는데 이를 한 번도 시행해보지 않고 다시 제도를 뒤엎는 것이다. 참 혼란스럽다. ‘교육 실험쥐’로 전락한 학생들의 분노가 들리지 않는가.

김준동 공공정책국장 겸 논설위원 jd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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