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반려견문록

[반려견문록] 거침없이 시크하게, 내 멋대로 살아라


퀴즈 하나. 몇 년 전 아르헨티나 라플라타 박물관이 남극에 묻혀 있던 거대한 화석을 발굴했다. 3400만년 전에 살았던 동물 화석이다. 동물의 키는 약 2m. 지금까지 발견된 동종 화석 중 가장 큰 덩치라고 했다. 독일 젠켄베르크 자연사박물관도 뉴질랜드에서 고대 화석을 발견했다. 무려 6600만년 전에 살았던 동물인데, 몸무게가 100㎏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됐다. 이 거대한 동물은 무엇일까.

화석으로 남은 이 거대한 동물은 놀랍게도 펭귄이다. 일명 자이언트펭귄. 키가 2m에 달했다니, 몸길이 50㎝도 안 되는 나 같은 강아지는 정말 ‘하룻강아지’로 보일 거다.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펭귄 가운데 가장 큰 황제펭귄보다 2배나 큰 이 펭귄들은 화석만 남기고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티라노사우루스처럼.

수천만년이 지나는 동안 그중 단 한 마리만 살아 남아 오늘에 이르렀다. ‘살아 남은 자의 슬픔’은 오히려 거침없는 유쾌함으로 승화되어 2019년 대한민국을 흔들었다. 자이언트펭귄답게 키도 크고 몸무게도 육중하다. 성별은 모르고, 그 스스로 관심 없다. 고향 남극에서 뽀로로와 BTS를 보고 유명한 크리에이터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한국으로 오기로 결심, 헤엄쳐서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멀리 6600만년 전 조상을 둔 자이언트펭귄이니까 그 정도 수영 실력이나 생명력, 끈덕진 지구력이 있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오는 도중 스위스에서 요들송을 배웠단다. 학습력도 대단하다. 이 친구 이름은, 이미 다 알아챘겠지만 펭수다. EBS 연습생.

펭수는 데뷔한 지 6개월도 지나지 않아 대스타가 되었다. 초등학생뿐 아니라 20, 30대 직장인들도 그를 보고 환호한다. 그보다 훨씬 나이 많은 우리 누나도 펭수를 좋아한다. 내가 보기에도 10살짜리 이 자이언트펭귄은 친구로 삼을 만하다. 인형 같은 펫으로 사는 대신 내 의견을 말할 줄 아는 시크한 반려견으로 살아온 나는 남들 눈치 보지 않고 자신감 있게 사는 그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고 건방을 떨거나 오만한 캐릭터가 아니다. 펭수는 이미 의젓한 어른이고 믿음직한 친구이며 센스 넘치는 동료다. 점잖고 근엄한 척하는 어른들이나 도덕 교과서 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소위 멘토들과는 달리 제멋대로이고 당돌하지만 따듯한 펭수에게서 사람들은 힘을 얻고 위로를 받는다. 웃음은 기본이고.

하루는 펭수가 고향 이야기를 하는 걸 들었다. 혼자만 키가 커서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했다는 이야기, 가족과 떨어져 지내느라 외로움을 느낀다는 고백 말이다. 그가 우울증을 앓느라 좋아하는 과자도 안 먹고 평소처럼 까불지도 않으며 소품실에 틀어박혀 늑대처럼 하울링을 해댄 하루도 있었다. 오래전 화석으로만 남은 자이언트펭귄에 대해 알고 있는 나는 솔직히 지금 남극에 있다는 펭수 가족의 존재를 믿을 수는 없지만, ‘사장님, 밥 한 끼 합시다’라고 외쳐대는 펭수에게도 생각보다 깊은 아픔이 있다는 걸 알겠다.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사람이나 개나 펭귄이나.

2030 직장인이 된 90년대생들에게 펭수는 말한다. 눈치 보지 말고 원하는 대로 살아라. 머지않아 마흔이 될 82년생 김지영에게도 펭수는 말한다. 자신을 믿고 사랑하라. 웃어라. 그리하면 행복해지리니. 나도 펭수를 따라 덧붙인다. 그리고 많이 아프더라도 사람들아, 부디 죽지는 말자. 오래 살아남는 자가 이긴다. 나는 당신이 이겼으면 좋겠다.

최현주(카피라이터·사진작가)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