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두글자 발견 : 빈 배] 비울 때 채워주신다

썰물로 바닷물이 빠져나가 버린 백사장에 덩그러니 놓인 빈 배가 예수님이 떠나 절망스러운 사람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듯하다. 빈 배는 세상에서는 실패이지만 인생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은혜의 빈 배가 될 수 있다. 사진은 충남 홍성 죽도 해변의 빈 배. 죽도(홍성)=황병설 기자

우리는 살면서 인생이란 바다에 수없이 그물을 던지지만, 원하는 것을 건지기보다 실패를 건질 때가 더 많다.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음에도 빈손일 때 “하나님 왜 빈 배입니까”라고 묻는다. 그때가 하나님이 움직이시기 시작하는 타이밍이란 걸 우린 잘 알지 못한다.

2000여년 전, 갈릴리 바닷가에도 밤새 그물질을 했지만 빈 배로 돌아온 어부들이 있었다. 이들은 회사에서 야근하듯이 밤새 팔이 아프도록 그물질을 했지만, 물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경기침체로 피곤과 허탈에 절망하는 자영업자들처럼 삶이 무기력하게만 느껴졌다. 신약성경 누가복음 5장과 요한복음 21장에 갈릴리 바닷가의 빈 배를 찾아오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만나는 장면이 기록돼 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 공생애 초기,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의 기록이다.

베드로의 ‘빈 배’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눅 5: 4~7)

베드로는 밤이 맞도록 그물을 던졌으나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다. 어부들에게 빈 배, 빈 그물은 실패의 상징이고 부끄러움이었다. 베드로는 아마도 “제길, 밤새 헛수고했네. 왜 이리 되는 일이 없지”라고 투덜거리며 그물을 씻었을 것 같다. 예수님은 빈 그물을 씻고 있는 베드로에게 “그 배를 내게 좀 빌려주겠니”라고 말씀하셨다. 만약 베드로의 배가 만선이었다면 주님을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내 안에 세상 것들이 가득하면 주님이 들어올 자리가 없듯이 말이다. 예수님은 빈 배에 올라 말씀을 전했고 고기 잡는 기적을 행하신 후 제자들을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셨다.

라파엘로가 1515~1516년에 그린‘고기잡이배의 기적’. 영국 런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소장 중이다.

주님은 우리가 빈 배를 육지에 대고 허탈에 빠져 있을 때, 구멍 난 영혼을 깁고 있을 때, 상처 난 육신을 끌어안고 고통으로 시달릴 때,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말할 때, 그때 찾아 오신다. 베드로의 빈 배는 좌절과 실패의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우리가 할 일은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지라”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는 것이다. 주님을 만나면 인생의 방향과 목적이 바뀐다. 제자들은 재산목록 1호였던 배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나섰다.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눅 5:11)

그 후 많은 일이 있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베드로, 도마, 나다나엘, 요한과 야고보 등 7명의 제자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갈릴리 바닷가엔 이들의 생계수단이던 고기잡이배가 있었다. 빈 배를 보고 제자들은 죄책감으로 통증을 느꼈을 것이다. 한때 그 배는 복음 전도를 꿈꾸며, 천국을 알리는 배가 아니었던가. 뿐만 아니라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목숨을 다해 따르겠노라고 맹세했으나, 예수님이 십자가 수난을 당하실 때 배신했던 기억이 났을 것이다. 제자들은 생계를 위해 다시 고기잡이배를 탔다.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요 21: 3)

현대를 사는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후 누구보다 열심히 주님을 섬길 것을 약속했지만 어느새 세상의 것들을 좇느라 그 언약은 다 잊어버렸다. 내 배는 여전히 세상의 것들로 가득 차 예수님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 인생의 갈릴리 바다는 항상 존재한다. 예수님을 만난 후에도 이전과 똑같은 삶을 살며 인생의 바다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빈 그물을 들고 주저앉아 울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실패 속으로 들어오시는 주님

하나님은 우리가 자신의 무능을 철저히 깨닫고 완전히 빈 배가 됐을 때 그 배에 올라오신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빈 배와 빈 그물은 주님이 일을 시작하는 타이밍이다. 주님의 채우심을 경험하는 기회이다. 하나님은 고통과 절망으로 갈라진 마음의 틈새로 스며들어오신다.

일본 소설가 엔도 슈사쿠는 하나님은 인간의 가장 비루하고 약한 부분, 어떻게도 해볼 수 없는 부분을 통해 말을 걸어온다고 말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려움에 빠질 때 자신을 더 찾게 만들며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철저히 깨지고 아플 때 하나님은 우리의 절망 속으로 들어오신다는 것이다.

“신은 어디로 숨어들지 모른다. 그리고 신은 우리가 범하고 있는 악을 이용해서라도 우리를 붙잡으려고 한다. 그러나 어떤 죄 안에도 구원의 가능성이 있고, 어쩌면 죄 안에야말로 그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죄 안에도 신이 그 인간을 바로 옆으로 끌어당기려는 함정이 설치돼 있을지도 모른다.”(‘엔도 슈사쿠의 문학 강의’ 중에서)

주님이 없는 인생의 바다에 그물을 던지며 “주님은 대체 어디 계시는가?”라고 말할 때 AW 토저는 “내 안에 주님이 계시는 걸 못 느끼는 이유는 우리의 본성 안에 하나님을 닮은 것이 없기 때문이며 회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의 본성이 하나님을 닮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당신을 나타내실 수 없다. 우리가 의롭다 함을 얻고 거듭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완전케 하지 않는다.… 회개가 있어야 한다. 온유한 그리스도 앞에서 다른 사람들을 가혹하게 대하는 것, 용서의 주님이 보시는 가운데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는 것, 불같이 뜨거운 열정으로 충만하신 그리스도와 달리 미지근한 것, 하늘에 속한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세상적이고 세속적인 삶을 사는 것, 이런 모든 것들을 회개해야 한다.” (AW 토저의 ‘GOD’ 중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이 비워지길 기다리신다. 빈 배를 채우기 위한 기도가 아닌 주님의 임재를 간절히 구하는 기도가 필요하다. 나는 빈 배인가. 주님은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는 사람과 함께 하신다. 자신의 힘으로 삶의 배를 움직이려 했던 베드로가 순종한 후 한 고백은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5:8)였다. 실패 속에서 베드로와 같은 고백이 있다면 빈 배는 세상에서는 실패이지만 인생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은혜의 빈 배가 될 것이다.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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