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환 목사의 영적 장자권을 회복하라] 남의 교회 건축 ‘빚 보증’… 형님께 도움 요청했다 피눈물

<14> 연단 속에서 길어올린 축복 원리

이영환 대전 한밭제일장로교회 원로목사(왼쪽)가 1989년 대전 도마동 예배당 시절 예배를 드리고 있다. 당시는 1억원의 빚 때문에 시련을 겪던 시절이다.

한밭 제일의 교회를 선포한 후 나는 여전히 강단에서 자며 주님과 깊고 진한 사랑의 밀어(蜜語)를 나눴다. 하지만 하나님의 시계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돌아갔다. 이름하여 ‘거룩한 연단’이 시작된 것이다. 1987년 그해를 영원히 잊을 수 없다.

부흥회 강사로 오신 어느 목사님을 만났다. 얼굴도 미남이었고 목소리도 은혜로웠다. 달변가에 설교는 구수하면서도 힘이 있었고 사람을 휘어잡는 리더십을 지니고 있었다.

그분은 조만간 교회를 건축한다고 했다. 감사하게도 우리 교회 권찰이 건축업자로 선정됐다. 문제는 그 교회도 돈이 없고 권찰도 돈이 없었다는 것이다. 성도들이 자기들끼리 돈을 빌려줬으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꼭 내게 물어봤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이런 말을 하고 말았다. “기왕 빌려줄 것이면 은행에 있는 돈을 빌려주세요. 주님의 교회를 건축하는 데 빌려주면 얼마나 영광이 되겠습니까.”

그렇게 말한 것이 발목을 잡았다. 사실상 보증을 해준 상황이 됐다. 문제는 그분이 우리 성도들에게 돈을 갚지 못하면서 발생했다. 내가 1억원의 빚을 고스란히 지게 됐다. 지금 시세로는 수억원에 달하는 돈이었다. 개척교회 8년 차 목사로서는 천문학적 액수였다. 빚쟁이가 자그마치 20명이나 됐고 금융기관도 3곳이나 됐다.

빚에 시달리다 보니 사는 게 말이 아니었다. 돈을 빌려준 성도들은 매일 찾아와 이자를 달라고 했다. 이자를 주면 본전을 달라고 했다. 빌려서 주면 또다시 이자를 달라고 했다. 그게 매일 반복됐다. 빌린 돈은 내가 단 1원도 만져보지 못했는데 말이다.

하나님은 부흥강사였던 그분을 통해 나를 연단시키셨다. 그는 35세로 나보다 나이가 어렸다. 그런데 조심스레 돈을 갚으라고 하면 무시하는 말투로 대응했다. 자기 교회를 건축하면서 생긴 어려움인데 도무지 나를 배려하지 않았다. 너무도 야속했다.

그래서 기도제목을 이렇게 정했다. “첫째, 주님 이 연단의 깊은 터널이 소득 없이 아픔만으로 지나지 않게 하소서. 둘째, 그 목사님을 절대로 미워하지 않게 하시고 말씀대로 축복만 하게 하소서. 셋째, 이 연단이 빨리 지나가게 하소서.”

8개월 걸린다는 건축은 3년이 걸렸다. 그 시간이 그렇게 길 수 없었다. 하루하루가 긴장과 초조의 연속이었다. 기도 없이는 살 수 없었다. 그래서 금식을 했다. 얼마나 말랐던지 목사님들이 초상집에 가면 “다음 차례는 이영환 목사”라고 할 정도였다.

그렇게 돈에 쫓기던 때 형님에게 돈을 빌리러 갔다. 3000만원만 있으면 100만원, 200만원, 300만원 빌린 15명은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상호신용금고와 신용협동조합 말고는 3명 정도만 남았다. 그래서 시골 형님한테 땅을 조금 팔아서 돈을 빌려달라고 해볼 생각이었다.

어렵게 형님을 찾아갔지만, 가슴을 후벼팠다. “다른 목사들은 도시에서 목회하면 살도 찌고 보기도 좋던데 너는 몰골이 이게 뭐냐. 삐쩍 말라가지고…. 너 같으면 예수를 믿겠냐.”

지금은 집사님이지만 그때는 불신자였던 형님의 말을 들으며 나는 피눈물을 흘렸다. 시골집을 나오면서 다짐했다. “나는 반드시 예수님 때문에 복을 받으리라. 형님 입에서 ‘너 보니까 하나님 살아계시네. 너는 예수 믿고 복 받았네’라는 말이 나오도록 무슨 일이 있어도 복을 받으리라!”

그렇게 결단하고 강단에 무릎을 꿇고 성경을 파고들었다. 그때만 해도 세상적인 복은 기복이라고 생각했다. 강단에서 기도하고 금식하면서 영적인 것만 신경 썼지 물질적 복은 도무지 나에겐 맞지 않는 옷이라 여겼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구약성경에는 물질적 복에 대한 내용이 많지만, 신약성경에는 잘 드러나지 않았다. 이 문제가 해결돼야 했다. 그러던 중 주께서 말씀을 깨닫게 해주셨다.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눅 24:50~51) 눈이 번쩍 뜨였다. ‘예수님이 복을 빌면서 승천하셨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복을 받기 원하신다는 말인데, 이 복에 물질적인 것이 있을까.’

그런데 그 답은 다른 말씀에서 간단하게 나왔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8:9)

예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부요하신 분이었는데 이 세상에 아주 가난하게 오셨고 가난하게 사셨다. 그 이유가 예수를 믿는 나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었다. ‘그래, 이제 성경적으로 복을 받아야 할 이유가 증명됐다.’

문제는 어떻게 복을 받느냐는 것이었다. 이 문제를 놓고 또다시 기도했다. 이 답도 금방 찾았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6~7)

당시 나에게 많이 심는 길은 오직 하나, 사례비를 전부 드리는 것이었다. 드리되 즐겁게 드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날부터 은퇴 전까지 사례비는 10의 2조, 3조 등 믿음의 십일조를 포함해 선교비 주일헌금 일천번제 절기헌금 등으로 모두 드렸다. 저축도, 가진 것도 하나 없이 다 드린 것이다. 결국 1991년 빚을 모두 상환했다.

이영환 목사

▒ 장자권은 이것이다
예수와 함께할 하늘나라 영광 바라보며 진군하는 고난 행군


예수를 영접하고 그 이름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얻는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 허물과 죄로 죽었던 존재였다.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서 살던 존재였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공중의 권세를 잡은 자들의 하수인이었다. 불순종의 아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의 지배를 받으며 살던 자였다.(엡 2:1~2)

그 영,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 누구인가. 그는 바로 온 인류를 파멸과 혼돈으로 몰고 가는 악하고 더러운 사탄, 마귀다.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에는 이 마귀에게 끌려다니며 죄의 종노릇 했다. 그렇게 마귀의 종으로 온갖 죄를 짓고 살아가던 내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후 나는 하나님의 양자가 됐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롬 8:15~16)

사람들이 왜 양자를 들이는가. 이유는 하나다. 자신의 가계와 소유를 상속시키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를 양자로 삼으셨는가. 바로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다.

하나님의 양자가 돼 제일 먼저 누리는 것은 상속권이다. 여기에는 많은 희생이 따라야 한다. 하나님의 상속자는 하늘나라에서 이루어지는 영광만 뜻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고난이 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7~18)

예수 이름을 믿고 그분을 영접한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공동 상속자라고 선포하신다. 너무나 영광스러운 사실이지만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 왕과 왕자를 예로 들어보자. 왕이 정상이라면 자기 왕권을 물려줄 왕자를 아무렇게나 키우지 않는다. 왕권을 물려받을 왕자 편에서는 어떤가. 세상의 또래 아이들처럼 적당하게 살 수 없다. 다스리고 지배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 공부하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양자, 하나님의 상속자, 하나님의 장자가 된 나는 어떤가. 내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다는 사실이 진짜로 믿어진다면 달라져야 한다.

진리이신 성경은 이 부분을 어떻게 말씀하고 계신가. 아주 쉽게 접근하는 길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바로 믿음의 거장들을 열거해 믿음의 큰 산맥을 이루는 히브리서 11장에 가면 나온다.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 11:15~16)

믿음의 사람들이 사모한 것은 하늘의 본향이었다. 하나님이 예비하실 성,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인 천국이었다. 믿음의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고난을 당하고 희생을 감수했는가.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 11:24~26)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성장해 탄탄대로가 보장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가 자기 백성을 위해 말할 수 없는 희생과 헌신의 길을 선택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진리는 이렇게 선포하신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분명히 믿음의 용장들이 받은 고난은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었다.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받을 하늘의 상을 바라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장자가 된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한다. 장자권은 바로 이러한 고난을 달게 받을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의 영적 신분을 확인하는 것이다. 장자권은 천국 상속자인 내가 예수님과 함께할 하늘나라의 영광을 바라보며 진군하는 고난 행군이다. 예수님과 함께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큰 산맥을 이어가는 희생과 고난 행렬에서 낙오되지 말라.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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