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인 A군(18)은 지난 8월 서울 서초구에 있는 11억원 상당의 아파트를 샀다. 임대보증금 5억원, 증여받은 6억원이 구입 자금이었다. 그런데 6억원의 출처가 수상했다. A군은 부모로부터 2억원, 친족 4명에게서 1억원씩을 증여받았다. 부모의 돈 6억원 가운데 4억원을 친족에게 나눠준 뒤 이를 A씨가 받는 식으로 ‘증여세 줄이기’를 했다는 의심을 받는다. 6억원 전체를 증여하면 세율이 30%에 이르지만 1억원 증여에는 세율 10%만 적용된다. 국토교통부는 편법적 분할 증여로 판단하고 국세청에 정밀 조사를 의뢰했다.

서울 부동산시장 과열 양상이 진정되지 않자 정부가 대대적으로 실거래 조사를 단행했다. 편법을 동원해 자식이나 가족에게 부동산을 증여하는 ‘이상거래 의심 사례’를 무더기로 적발했다. 이상거래 의심 사례의 36%는 이른바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에서 벌어졌다. 부동산을 수단으로 부를 대물림하는 현대판 ‘부동산 음서제’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국토부는 지난 8~9월 서울에서 신고된 공동주택 거래 2만8140건 중 부동산거래신고법 위반이 의심되는 2228건을 적발했다고 28일 밝혔다. 가족 간 대차 의심, 차입금 과다, 현금 위주 등 정상적 자금 조달로 보기 어려운 거래, 편법 증여가 의심되는 거래, 허위 신고 거래 등이다.

이 가운데 매매 계약이 끝나 자금출처 등을 따질 수 있는 1536건이 우선 조사 대상이 됐다. 1536건을 구별로 나누면 강남·서초·송파·강동구 550건(36%), 마포·용산·성동·서대문구 238건(15%), 나머지 17개구 748건(49%)이었다. 금액으로는 9억원 이상 570건(37%), 6억원 이상~9억원 미만 406건(26%), 6억원 미만 560건(37%)이다. 고가 부동산을 이용한 의심스러운 거래가 가장 많은 것이다.

국토부는 1차 조사를 완료한 991건 중 532건을 탈세 의심 사례로 국세청에 통보했다. A군처럼 증여세를 낮추기 위해 분할 증여를 한 것으로 보이거나 차입 관련 증명서류 없이 가족 간 금전 거래를 한 사례다.

금융회사의 대출 규정을 준수하지 않은 의심 사례 23건은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행정안전부에 통보됐다. 40대 B씨는 금융회사에서 개인사업자 주택매매업대출 명목으로 24억원을 빌린 뒤 서울시내 42억원짜리 아파트를 사는 데 모두 썼다. 사업자대출 외에 본인의 전세자금 13억원, 부친 상속금 2억원, 금융기관 예금액 약 3억원을 동원했다. 이 아파트를 다른 사람에게 임대하지 않고 본인이 거주했다. 사업자대출금을 용도 외로 사용한 편법이다.

이밖에 허위 신고 등으로 부동산거래신고법을 위반한 10건도 적발됐다. 서울시는 2억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방침이다.

정부는 편법증여 등 ‘부동산 음서제’를 뿌리 뽑기 위해 고강도 조사·조처를 할 방침이다. 국세청은 탈세 의심 사례를 자체 보유 과세 정보와 연계해 자금 출처를 세밀하게 들여다볼 예정이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대출약정 위반이 증명되면 대출금을 회수할 계획이다.

국토부는 검토를 앞둔 나머지 545건도 소명자료 제출 등의 절차를 거친 뒤 내년 초 2차로 결과를 발표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내년 2월부터 국토부에 ‘실거래상설조사팀’을 구성해 전국의 실거래 신고를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이상 거래가 발견되면 즉시 조사하겠다”고 강조했다.

세종=전성필 기자 f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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