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이 담긴 포스터가 28일 홍콩 금융가 센트럴지구의 한 기둥에 붙어 있다. 포스터에는 홍콩 시위대의 삽화와 함께 “홍콩 인권·민주주의 법안에 서명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감사를 표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홍콩 인권·민주주의법안(홍콩인권법안)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는 홍콩의 자치 수준을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홍콩 내 인권 탄압에 관여한 인사를 제재해야 할 의무를 지게 됐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법안의 일부 조항이 대통령의 고유 권한과 충돌할 수 있다며 중국을 배려하는 듯한 미묘한 여지도 함께 남겼다. 중국 정부는 미국이 패권적으로 내정간섭을 저질렀다고 비난하며 보복을 예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성명에서 “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중국, 홍콩 사람들을 존경하는 차원에서 이 법안에 서명했다”며 “법안은 중국과 홍콩의 지도자, 대표자들이 우호적으로 이견을 극복하고 항구적 평화와 번영을 이뤄내기를 기원하는 취지에서 제정됐다”고 밝혔다.

홍콩인권법은 홍콩 시민을 탄압한 관리에게 미국 비자 발급 제한 등 제재 조치를 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미 국무부는 매년 홍콩의 자치 수준을 검증하고 평가할 의무를 지게 된다. 국무부 평가 결과가 기준에 미달하는 경우 미 정부는 홍콩의 경제·무역 특별지위를 박탈할 수도 있다. 아울러 미국이 홍콩 경찰에 최루탄과 최루 스프레이, 고무총탄, 수갑, 테이저건, 물대포 등 시위진압 도구를 수출하는 것도 금지된다.

중국 정부는 즉각 반발했다. 러위청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28일 테리 브랜스태드 주중 미국대사를 초치해 항의 입장을 전달했다. 러 부부장은 “법안 서명은 홍콩 업무와 중국 내정에 간섭한 행위이며 국제법과 국제관계의 기본준칙에도 어긋난다”며 “중국 정부와 인민은 강하게 분노하며 결연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러 부부장은 “중국 측은 단호한 반격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모든 후과는 전적으로 미국 책임”이라고 부연했다.

국제사회는 홍콩인권법 발효가 미·중 무역협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중 양측은 무역갈등 해소를 위한 ‘1단계 합의’를 이뤄내기 위해 막판 조율을 이어가던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중 협상을 감안해 법안에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한때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상·하원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가결된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별도의 성명에서 “법안의 일부 조항은 대통령의 헌법적 권한 행사와 상충할 소지가 있다”면서 “행정부는 각 조항을 대통령의 헌법적 권한과 조응토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홍콩인권법의 일부 조항을 시행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구체적으로 어느 조항이 대통령 권한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트위터에 트럼프 대통령 성명의 이 문장을 인용하며 “말장난을 그만두라”며 “중국 공산당에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행정부가 홍콩 인권 탄압에 관여한 중국 관리를 제재토록 한 조항의 시행을 의도적으로 지연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내 위구르족과 무슬림을 탄압하는 중국 관리를 제재해야 한다는 측근들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홍콩인권법의 제재 조항을 미·중 협상에서 중국을 압박하는 카드로 사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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