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런던브리지에서 29일(현지시간) 흉기 테러를 벌인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런던 시민들에게 제압당한 후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 둘러싸여 있다. 오른쪽 사진은 양복 차림의 한 시민이 테러 용의자가 갖고 있던 흉기를 빼앗아 현장에서 벗어나는 모습. AP연합뉴스

런던 시내 중심부 런던브리지에서 29일(현지시간) 발생한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대낮 흉기 테러가 대형 참사로 이어지지 않은 이유는 목숨을 걸고 테러범을 제압한 시민 영웅들 덕택이었다. 희생자의 안타까운 사연과 용기 있는 시민들의 이야기가 전해지며 영국 사회를 울리고 있다.

가디언 등은 30일(현지시간) 테러범이 폭탄 조끼를 입고 있었지만 시민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제압하는 데 전념했다고 보도했다. 폭탄 조끼는 이후 모조품으로 판명됐다. 테러범 우스만 칸(28·사진)은 2010년 런던 증권거래소 폭탄테러를 모의한 혐의로 2012년 16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지난해 12월 가석방됐다.


테러 당시 커다란 칼 두 자루를 쥐고 있었던 칸에 대항해 시민들은 소화기 및 케임브리지대학에 전시돼 있던 150㎝가 넘는 외뿔고래 이빨을 들고 맞섰다. 시민들에게 제압당한 칸은 현장에 도착한 경찰에게 사살됐다. 이슬람국가(IS)가 이번 테러의 배후를 자처하고 나섰지만 영국 경찰은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단독 범행으로 보고 있다.

언론들은 외뿔고래 이빨을 들고 테러범을 쫓아갔던 남성이 폴란드 출신 이민자라고 전했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찬성론자들을 머쓱하게 만든다”고 평가했다. 브렉시트 찬성론자들은 이주노동자들이 영국으로 쏟아져 들어온다며 공포심을 부추겼지만 정작 폴란드 이민자는 위기에 처한 런던 시민들을 돕기 위해 위험을 불사했다는 것이다. 현지에서는 브렉시트를 두고 극한 대립을 이어가고 있는 영국 사회를 통합시키는 미담이라는 반응도 나왔다. 파키스탄 이민자 2세인 사디크 칸 런던시장은 “런던에서 가장 위대한 것 중 하나가 바로 다양성이다. 그래서 난 전혀 놀라지 않았다”며 찬사를 보냈다.

테러범을 제압한 용감한 시민 중에는 2003년 20대 지적장애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스탠퍼드 힐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제임스 포드(42)도 포함됐다. 일반 교도소보다 더 자유로운 개방형 교도소 수감자인 그는 테러 당시 현장에 있었고 테러범을 잡아두는 데 힘을 보탰다.

포드가 과거 수감됐던 그렌던 교도소 지원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버닝엄시티대학의 데이비드 윌슨 범죄학과 교수는 가디언에 “공개된 현장 사진 속에서 그를 알아봤다”고 밝혔다. 그는 “포드는 교도소에서 심리치료를 받았다”며 “그의 사례는 혁신적인 교정 정책으로 재소자가 충분히 변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번 테러로 2명이 숨지고 3명이 부상했다. 목숨을 잃은 이들 중 한 사람은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범죄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잭 메릿(25)으로 확인됐다. 메릿은 전과자 사회 적응 프로그램 ‘러닝 투게더’에 참가했다가 변을 당했다.

칸이 가석방 기간 테러를 저지른 사실이 알려지면서 가석방 제도에 대한 논란도 불붙었다. 정치권은 앞장서서 ‘네 탓 공방’을 벌였다. 노동당이 가석방위원회의 심사 부실을 들며 정부를 탓하자 보수당은 과거 노동당 정부가 도입한 조기 석방 관련 법안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메릿의 아버지는 트위터에 “제 아들은 언제나 약자 편에 서는 아름다운 영혼이었다. 아들의 죽음이 불필요하게 사람을 구금하거나 가혹한 형벌을 내리는 구실로 악용되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썼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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