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

손목시계형·자동차 키 모양 등 디자인 세련된 전자담배 ‘속속’
청소년·여성에 무방비 노출… 공산품 분류 광고·판촉 버젓이
국회, 신종담배 공격 나몰라라… 정국 경색에 법안 처리 ‘하세월’


담배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제품 디자인은 더 세련되고 화려하게 변신하고 있으며 흡연 전용 기기(디바이스)와 니코틴, 흡연 방식 등도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흡연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특히 청소년과 여성에서 흡연율이 점차 늘고있는 액상 전자담배의 경우 최근 ‘애플워치’ 처럼 생긴 손목시계형이나 자동차 키 모양 제품도 등장했다.

하지만 법적 기반 부재로 신종담배의 국내 시장 진입은 손쉽게 이뤄지고 있으며 액상의 주요 성분인 니코틴의 상당수가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미국 등에서 액상 전자담배로 인한 중증 폐손상 집단 발생 사태를 계기로 지난 10월 우리 정부가 추진 계획을 밝힌 ‘3대 담배규제 법안’은 국회의 책임 방기로 사실상 올해 안 처리가 무산됐다. 내년 4월 총선 등 정치 일정을 감안하면 20대 국회에서 흡연으로부터 국민 건강권을 지킬 법안 마련은 물 건너갈 공산이 크다.

최근 출시된 손목시계형 전자담배(위쪽)와 하이브리드형 전자담배. 세련된 디자인과 독특한 구성으로 청소년과 여성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 제공, 연합뉴스

점점 진화하는 전자담배

국내외 담배회사들은 그간 담뱃갑의 외형 변화와 더불어 이른바 ‘순한 담배’ ‘저타르 담배’ 등 위해성을 줄였다는 제품들로 경쟁해 왔다. 2년 전에는 연초를 태우지 않고 배터리 열로 가열해 쪄서 나오는 수증기를 흡입하는 ‘가열담배(궐련형 전자담배)’가 나왔다.

액상 전자담배의 변신은 더 놀랍다. 액상 담배는 기본적으로 니코틴 액상과 가향물질 등 첨가물을 담는 카트리지와 배터리로 구성돼 있다. 배터리 열로 액상을 기화시켜 흡입하는 방식이다.

이런 1세대 액상 전자담배에 이어 날렵한 펜 모양의 2세대, 탱크형의 3세대, USB모양의 4세대 등 해마다 새 제품이 출시되고 있다. 대부분 이미지에 민감한 청소년과 여성들을 주 타깃으로 하고 있음은 명백하다.

지난 8월엔 한 외국계 회사가 하이브리드형 전자담배를 국내에 선보였다. 흡연전용 기기 아랫단에 든 액상을 배터리로 가열하면 기화돼 그 기체가 제일 윗단에 들어있는 연초가루 캡슐을 통과하도록 돼 있다. 여기서 니코틴을 머금은 수증기가 입을 통해 흡입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는 국민건강증진법상 전자담배 기준에 포함되지 않아 ‘기타형 담배제품’으로 분류됐다. 근래엔 손목시계형이나 자동차 키 모양의 전자담배가 등장해 인터넷과 유튜브 등에서 광고 및 할인 판촉이 이뤄지고 있다.

문제는 흡연을 도와주는 기기의 경우 담배사업법상 담배의 정의에 포함되지 않고 공산품으로 분류돼 규제 자체가 어렵다는 점이다. 일반 담뱃갑이나 액상 포장지에 표시되는 흡연 경고그림을 안 붙여도 되고 광고·판촉도 자유롭다.


현재 전자담배 기기에 적용되는 유일한 법적 장치는 ‘청소년 유해물질’ 고시(여성가족부 소관)다. 2년 전 고시 개정에 따라 ‘니코틴 용액 등 담배 성분을 흡입할 수 있는 전자장치’가 청소년 유해물질로 지정됐지만 이것만으로 인터넷 등을 통한 청소년 대상 불법 유통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이성규 한국건강증진개발원 국가금연지원센터장은 2일 “아이들이 손목에 전자담배를 차고 있더라도 부모는 시계인 줄로 안다. 청소년이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법망 벗어난 니코틴 제품 봇물

전자담배 액상에 들어가는 니코틴과 흡연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쓰이는 니코틴(free base nicotine) 보다 낮은 온도의 가열로도 기체화돼 고농도 니코틴 흡수가 가능한 ‘니코닌 솔트(nicotine salt)’를 사용한 제품이 속속 나오고 있다.

이 센터장은 “흡연 방식의 경우 기존 입에서 잠깐 머금은 뒤 흡입하는 방식(mouth to lung vaping)이 아니라 요즘은 입에서 내뿜는 에어로졸(하얀 수증기) 양을 많게 하기 위해 처음부터 폐 깊숙이 흡입하는 방식(direct lung vaping)이 많이 유행하고 있다”면서 “멋있어 보일지 모르지만 기체가 곧바로 호흡기로 들어가면, 그 만큼 그 속의 유해물질이 폐에 손상을 줄 가능성이 더 커진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국내에는 법망을 빠져나간 니코틴 전자담배가 우후죽순 늘고있는 추세다. 담배사업법상 담배는 ‘연초의 잎을 원료로 만든 제품’으로만 정의돼 있는데, 연초의 줄기·뿌리에서 니코틴을 추출했다거나 합성 니코틴을 사용했다는 액상 담배제품이 70여개에 달한다는 사실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드러났다. 이들은 담배가 아니어서 암 유발이나 중독 위험 등의 경고그림이 붙지않고 세금 부과 대상에도 빠져 있다.

일반 궐련의 경우 담뱃갑에 인체에 유해한 니코틴, 타르가 들어있다는 표시가 이뤄지지만 이들 법의 사각지대 니코틴 제품은 두 가지 주요 성분 표시조차 없다. 상당수 액상 전자담배는 그야말로 ‘깜깜이 정보’ 상태에서 흡연하고 있는 셈이다.

최하영 한림대 의대 강남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지난달 열린 대한금연학회 학술대회에서 ‘신종담배와 폐질환’의 상관성을 발표했다.

최 교수는 “약물이나 의료기기와 달리 전자담배는 시판 전 독성 검사와 장기간 안전성에 대한 충분한 검증을 받지 않고 있다”면서 “전자담배를 금연 보조제로 사용하는 데 대해서도 논의 중이나 아직 안전성에 대해선 정립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수 십년 이상 지속한 흡연으로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폐암 등이 발생하는 점을 고려했을 때 전자담배가 호흡기에 미치는 악영향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면서 “충분한 근거 확보를 위해 신종담배와 폐질환 연구에 전문가와 정부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3대 담배규제법 논의 올스톱

정부는 지난 10월 23일 발표한 범부처 종합대책에서 담배제품 사각지대 해소와 관리 체계 강화를 위한 법적 근거 마련 계획을 밝혔다. 담배의 법적 정의를 넓혀 연초의 줄기·뿌리 니코틴 등 제품도 포함하고 담배 제조·수입자는 담배 및 담배 연기에 포함된 성분·첨가물 등의 정보 제출을 의무화하며 청소년·여성의 흡연 시작을 돕는 담배 내 가향물질 첨가를 단계적으로 금지하는 법안을 조속히 추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담배 정의 확대법’과 ‘담배 유해성분 공개 의무화법’ ‘가향물질 첨가 금지법’ 등 이른바 3대 담배규제법안은 이미 국회에 다수 발의돼 있는데도, 논의 자체가 지지부진하다.

담배 정의 확대법은 기획재정위원회 법안소위 심사 대상에서 아예 빠졌고 가향물질 첨가 금지법은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소위 논의가 검토됐으나 국회 파행으로 중단됐다.

보건복지위까지 통과돼 법사위원회에 계류중인 ‘담배 유해성분 공개 의무화법’도 논의에 진척이 없어 이달 정기국회 본회의 통과는 불가능할 전망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세 법안 모두 올해 안 처리는 사실상 어렵게 됐다”며 “내년 2, 5월 임시국회에서 재추진할 방침”이라고 했다.

복지부는 또 전자담배 전용 기기를 담배에 준하는 제품으로 정해 경고그림 부착, 광고·판촉 규제를 가능하게 하고 청소년 흡연 유발 등 공중보건에 악영향을 미치는 경우 제품회수 및 판매금지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올해 안에 국회에 제출하겠다는 방침이지만 20대 국회에서 입법이 이뤄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서홍관 국립암센터 금연지원센터장은 “국회는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신종담배의 출현에 대처할 법안들을 하루빨리 통과시켜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