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여섯 살 무렵, 강원도의 어느 절에 놀러 갔었다. 절 내에 있는 석종 앞에는 소원을 적는 나무함이 있었다. 자신들도 소원을 적겠다며 종이를 집어 든 아이들은 연필을 꾹꾹 눌러가며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뭐라고 썼는지 살짝만 이야기해 달라고 물었다. 아이가 귓속말로 들려준 말은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죽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적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두려워하기 시작한 것은 네다섯 살부터였다. 어느 날 아이가 울면서 어떻게 하면 죽지 않는지 방법을 알려 달라고 조른 적이 있었다. 미처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한 나는 모든 사람은 다 죽는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영생을 위해 불로초를 찾아 헤매던 진시황도 끝내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고 말했는데 상황은 더 나빠졌다. 아이들은 더 크게 울면서 분명 방법이 있을 것이니 찾아오라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그제야 당황한 나는 적절하지 않은 대답을 했음을 깨달았다. 구원투수가 필요했다. 큰 애를 불러 상황을 설명하고 좋은 방법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큰 애는 잠시 생각하더니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의 이야기를 동생들에게 들려주며 이 돌을 찾으면 죽지 않을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아이들에게 내일 돌을 꼭 찾아주겠다고 약속을 한 뒤에야 겨우 울음을 그쳤다. 그 날 밤 내일 어떤 돌을 찾아와 불멸의 돌이라며 건네주어야 하나 고민하며 잠을 설쳤던 기억이 난다.

당연하지만 그 후로도 누구도 죽음을 뛰어넘었다는 사람의 소식은 듣지 못하였다. 인간은 누구나 늙고 죽음을 맞이한다. 올 한해 가족의 죽음을 경험하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죽음과 삶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삶을 어떻게 사느냐는 죽음을 어떻게 맞이하느냐와 연결되어 있다. 줄리안 반스는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에서 몽테뉴의 말을 인용한다. 죽음을 물리칠 수 없는 우리가, 죽음에 반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한시도 놓지 않는 것이라고. 어느덧 한 해가 저물어간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생각하고, 일상 속에서 의미를 찾고 만들어가는 하루하루를 보내기 위해 노력해본다.

문화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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