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

2009년 한국에 온 베트남 결혼이주여성 A씨는 슬하에 아들 하나를 두고 살며 남편에게 숱한 가정폭력을 당했다. 2012년 A씨의 남편이 제기한 이혼소송에서 법원은 A씨가 경제적 능력이 없다며 남편에게 아이 양육권을 줬다. 면접교섭권만 얻은 A씨가 한국에 남으려면 아이와 면접교섭을 이행했다는 사진 등의 증거를 체류 연장 시 출입국관리소에 제출해야 하는데 남편은 아이를 보여주지 않았다. A씨는 남편을 상대로 면접교섭권 소송도 벌여 승소했지만, 남편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매일 남편에게 전화하고 남편을 찾아간 A씨는 그제야 겨우 아이를 만날 수 있었다.

가정폭력에서 결혼이주여성은 ‘약자 중의 약자’로 평가된다. 신고부터 이혼까지 가해자인 남편의 영향권 아래서 벗어나기 쉽지 않아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7년 7~8월 결혼이주여성 920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42.1%가 가정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었지만, 이 중 외부에 도움을 요청한 경우는 31%에 불과했다.

결혼이주여성이 가정폭력 신고를 주저하는 이유는 서툰 한국어와 공권력에 대한 낮은 신뢰도 등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장애물은 체류다. 다문화가족을 지원하는 ‘다누리콜센터’의 1~6월 상담 건수 7만3879건 중 체류 및 국적에 대한 문의가 10.5%를 차지한 것도 이런 결혼이주여성의 고민을 보여준다.

체류 연장이나 국적 획득에는 남편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한국인 남편과 이혼 상태이거나 별거 중이면 한국 국적을 받는 데 불리하다. 법무부가 결혼이주여성의 체류 연장 시 배우자의 신원보증을 요구하는 내용의 출입국관리법 시행규칙을 2011년 폐지했지만, 현장에선 잘 지켜지지 않는다.

지난 7월 법무부 앞에서 열린 ‘이주여성의 권리 보장과 인종차별을 포괄하는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원옥금 주한베트남교민회 대표는 “결혼이주여성이 출입국관리소에 비자를 연장하러 가면 남편이 동행해줘야 하고 동행하지 않으면 남편 동의서, 위임장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결혼의 진정성’을 조사하는 데도 남편이 아내를 나쁘게 얘기하면 비자 연장이 안 돼 아내에게 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지속적인 폭력에서 벗어나려면 남편과 이혼해야 하는데 자녀 없이 섣불리 협의이혼 했다간 본국으로 송환된다. 이 때문에 결혼이주여성은 재판을 통해 이혼에 있어 자신의 유책이 없음을 증명해야 한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법조브로커도 활개를 친다. 출입국사무소에 붙어있는 ‘체류 기간 연장 보장’ 등을 홍보한 행정사 광고를 믿고 갔다가 체류 연장은커녕 돈만 뜯기는 피해도 발생한다.

최근 한국에 온 지 3개월 된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이 남편에게 살해돼 암매장당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여성가족부와 법무부는 지난달 22일 결혼이주여성의 귀화 요건을 완화했다. 자신의 유책이 없음을 증명하는 것뿐 아니라 가정폭력 등 배우자의 귀책 사유를 증명하는 경우에도 귀화를 허가해주겠다는 것이다. 정성희 충북이주여성상담소장은 그러나 “한국어가 서툰 이주여성이 병원치료기록이나 경찰출동기록 등을 확보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며 실효성에 의구심을 표했다.

여가부와 법무부가 내놓은 대책 가운데 강력범죄 경력자가 외국인 아내를 맞을 수 없도록 하는 부분도 이미 일정 부분 걸러지고 있다. 법무부가 2014년 4월 결혼비자 발급심사를 강화하면서 상대의 건강정보나 범죄경력, 결혼경력, 소득·재산 등의 기본정보는 획득이 가능하다. 그러나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맞선부터 혼인신고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하면 혼인신고 후 범죄경력을 알게 돼 마지못해 결혼하는 경우도 있다.

이혼한 결혼이주여성의 한국 생활은 녹록지 않다. 그나마 사무직으로 취직하면 통·번역인데 대부분 비정규직이다. 식당이나 봉제 공장 같은 데에 들어가 저임금을 받으며 근근이 살아간다. 본국으로 돌아가봤자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기도 힘들고 한국보다 더 보수적인 본국에서 이혼녀로 살기 쉽지 않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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