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반 신학교를 졸업한 친구가 멀리 남도 끝자락 바닷가 마을로 농촌목회를 떠났다. 놀이공원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서로의 학비를 대던 그의 여자친구는 ‘사모’가 됐다. 도시에서 자란 두 사람은 나름의 소명을 안고 서울을 등졌다.

그사이 나는 취직을 했다. 바쁜 일상에 시나브로 남도로 간 전도사 친구 부부가 흐려졌다. 그해 여름휴가, 작정하고 그들의 사역지를 찾았다. 고속버스, 시외버스로 갈아타며 읍내에 도착했고 그 읍내에서 다시 군내 버스를 타고 비포장 시골길에 내려야 했다. 1980년대 중반 남도 농촌은 그렇게 황량했다.

그들이 부임한 교회는 반농반어 마을이었다. 하지만 문화적 충격을 받을 정도로 예배당이 형편없었다. 흰 칠이 벗겨진 시멘트 건물, 삐꺽거리는 마루판, 닫히지 않는 창문 등. 열 명도 안 되는 교인 대개는 칠순이 넘은 할머니들이었다. 주일 헌금이 500원이 나온다고 했던가.

나를 울컥하게 했던 건 사택이었다. 예배당에 딸린 방 한 칸과 부엌이었는데 어둡고 눅눅했다. 그는 “형편이 이렇다”며 멀리 온 친구를 위해 밥상 기도를 했다. 깡마른 부부의 얼굴을 보니 적잖이 속이 상했다. 물걸레질로 반짝반짝한 예배당 내부와 잘 정리된 채송화 화단이 나름대로 위로가 됐다.

그날 늦은 오후, 부부는 분주했다. 예배당 안에서 ‘문해학교’를 진행하기 때문이었다. 권사님들은 서로 “염병하네”와 “거시기”를 입에 달고서도 손으로 또박또박 글을 익혔다. 서울 말씨의 사모는 그들 옆자리에 앉아 애교 있게 가르쳤다. 어린이들에게 영어 지도도 한다고 했다.

이날 밤 부부는 마을 청년 모임에 나갔다. 청년들을 전도하고 농촌공동체 현실에 참여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튿날 새벽, 부부는 희미한 형광등 아래서 마룻바닥 기도를 했다. 허리 구부러진 권사님 두세 명이 이어 예배당에 도착했다. 친구 전도사의 한숨 섞인 기도, 사모의 눈물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다.

세월이 훌쩍 지난 지금도 이 부부는 같은 모습으로 목회를 한다. 몇 군데 거쳤지만 첫 목회지의 영성을 놓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도농복합형 읍내 교회에서 100여명의 성도와 김장을 나누고, 독거노인에게 도시락 배달을 하며 늘 감사가 넘친다. 하나님의 첫 음성을, 첫사랑을 듣고 받았던 전도사 시절에 붙들었던 뜨거운 신앙을 지켜가고 있다. ‘위대한 친구’가 아닐 수 없다.

요즘 신학생들은 시대가 변해서인지 개척하거나 미자립 농어촌교회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단 한 명의 성도도 없는 예배당에서 사모를 앉혀 놓고 설교했다는 교회 개척담은 전설이 되어 가고 있다. 반면 도시 큰 교회 전도사 청빙에는 수십대 1의 경쟁률을 보인다. 파워포인트(PPT), 엑셀, 영상편집의 재능을 자랑하는 전도사들이 몰린다. 이들에 의해 시스템화하는 신앙의 진보를 느낀다고 해야 하나. 한데 세상 사람들은 말쑥한 슈트 빼입고 PPT 실력 빼어난 전도사를 원하는 거 같지 않다. 영화 채널에서 자주 보게 되는 ‘형’ ‘완득이’만 보더라도 그렇다.

‘형’은 사기전과 10범 두식(조정석 분)과 유도 국가대표였으나 사고로 실명하게 된 동생 두영(도경수)의 이야기를 다룬 코믹 감동극이다. 시각장애인 동생 보호를 이유로 가석방된 형은 동생을 이용해 뻔뻔한 사기행각을 벌인다. 이들 사이에 전도사 대창(김강현)이 등장하는데 깐죽거리는 스타일이면서도 마음 아픈 이들을 거두는 캐릭터다. “자, 포도 주스야 오렌지 맛 나는…”이라고 밉상을 떨면서도 “예수 믿으시게요?”라며 가까워지는 인물이다. 신앙의 깊이가 담긴 배려심에 두식마저 빠져든다.

또 영화 ‘완득이’는 장애 아버지와 외국인노동자 어머니를 둔 열여덟 살 문제아 완득이(유아인)가 주인공이다. 사사건건 완득이를 간섭하는 옥탑방 남자 동주(김윤석)가 학교 담임교사로 등장한다. 완득은 어느 날 예배당에 들어가 “제발 똥주를 죽여주세요”라고 간구해 보는데, 어라 그 교회 전도사가 동주네. 그 교회는 이주노동자와 가난한 이웃 등을 보살피는 공동체교회였다. 동주는 완득에게 투박하면서도 속 깊은 사랑을 쏟는다. 완득은 그가 전도사라는 것에 놀라 “사이비교회 아니에요” 하고 시비를 건다. 동주가 머리를 쥐어박으며 답한다. “믿음 소망 사랑 있고 십자가 있고 전도사 있는데 교회이지 인마.”

이 땅의 목회자들이 전도사 시절의 첫 마음을 다졌으면 한다.

전정희 뉴콘텐츠부장 겸 논설위원 jhjeon@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