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 한양대 교수가 최근 내놓은 다산 정약용(1762~1836)의 평전 ‘파란’(천년의상상)은 다산의 사상에 새겨진 천주교의 무늬를 드러낸 수작이었다. 다산은 1784년 세례를 받았지만 배교의 길을 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책은 그의 배교가 ‘진실’이었는지 묻는다. 정 교수는 다산은 임금과 신(神)이라는 “두 개의 하늘”을 머리에 이고 살았던 학자라고 주장한다.

만약 이 책을 흥미롭게 읽은 독자라면 주목할 만한 신간이 서점가에 등장했다. 제목은 ‘다산, 자네에게 믿는 일이란 무엇인가’. 첫 한국인 영세자이자 다산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던 이승훈(1756~1801)의 삶을 통해 믿음의 의미를 묻는 책이다. 이승훈과 다산은 둘도 없는 친구였는데, 조정은 이승훈을 “서학 전파의 원흉”이라고 몰아세워 참수형을 선고했다. 반면 다산은 교묘한 처신으로 목숨을 부지했다.

인천 남동구에 있는 한국인 첫 영세자 이승훈의 묘역. 뉴시스

책은 처형을 앞둔 이승훈이 다산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한다. “여보게, 다산! 방금 전에 자네는 살아남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네”로 시작한 편지는 “한때의 동지로서 말하노니 부디 부끄러움을 아시게”라는 문장으로 끝난다. 절절하면서도 담담하게 자신의 삶을 돌아본 편지다. 그런데 이승훈은 순교자가 아닌 배교자의 길을 택한 인물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어떻게 해도 죽을 사람이었고 그래서 회개는 어찌 보면 쉬운 선택이었네. …배교자로 죽어 내가 이 세상에서 지은 죗값을 치르려 하네. 정직한 배교자로 죽어 주님 앞에 서고자 하네. 주님 앞에서 이렇게 말하려고 하네. 믿는 일이 힘들었다고. 믿는 일이 너무 힘들었다고.”

‘다산, 자네에게…’를 펴낸 윤춘호는 SBS 기자다. 그는 전작인 ‘봉인된 역사’(푸른길)가 그랬듯 상상력을 통해 역사의 구멍을 채워 넣는 방식으로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저널리스트가 믿음의 의미를 묻는, 다분히 철학적인 주제를 파고든 작품을 내놓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주목할 만한 책이다. 다산이 신앙의 동지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도발적인 내용도 담겨 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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