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국민일보DB

칼럼니스트이자 소설가인 고종석은 조국 사태로 ‘1997년 체제’가 결딴났다고 말한다. 1997년 체제는 그해 대선에서 정권 교체가 이뤄지면서 정치판이 ‘진보 대 보수’의 구도로 재편된 것을 의미하는데, 고종석이 이 체제가 끝났다고 주장하는 건 조국 사태로 진보 진영의 위선이 백일하에 드러났다고 여겨서다.

“진보는 약자와의 연대, 사회적 공정성, 이런 것들을 중요한 가치로 체화하고 있는 사람들을 뜻하잖아. 그런데 그게 환상이었다는 게 이번 조국 사태에서 드러난 거야. 조국씨는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려 하지 않았고 사회적 공정성을 이루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어. 오히려 정반대로 살아왔다는 게 드러났어. 남은 게 뭐겠어? 환멸이지. 조국씨가 무시무시한 짓을 한 거야.”

그렇다면 고종석이 내다보는 한국 정치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그는 “한국의 정치세력이 더 잘게 나뉠 계기가 왔다”면서 “양당제의 시대에 작별을 고하고 다당제 시대가 와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 대한민국은) 사실상 더불어민주당과 그 아류정당, 자유한국당과 그 아류정당으로 나뉘어 있는 사실상의 양당제잖아. …다당제로 나아가야 하고,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그런 점에서 조국이 꼭 나쁜 일만 한 건 아니지.”

이 같은 주장은 최근 출간된 신간 ‘잡담’(싱긋)에 실려 있다. ‘잡담’은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가 묻고 고종석이 답한 인터뷰집이다. ‘잡담’ 외에도 요즘 서점가엔 조국 사태가 남긴 과제를 정리한 책이 속속 출간되고 있다. 이들 신간 중에는 가지런한 글과 통렬한 비판으로 대단한 필명을 날리는 일급 논객의 작품도 적지 않다.

‘잡담’과 관련된 이야기를 조금 더 이어가 보자. 고종석은 “지금 민주당이 과연 자한당과 큰 차이가 있느냐”고 물으면서 “그 차이를 조국이라는 사람이 상징적으로 거의 지워버렸다”고 지적한다. 문재인정부에서 밀어붙이는 검찰 개혁의 방식에도 반기를 든다. 현재의 검찰 개혁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에 방점이 찍혀 있는데 대통령이 공수처 수장을 임명한다면 대통령의 힘에 휘둘리는, 유명무실한 개혁이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강도 높은 비판 역시 수두룩하게 등장한다.

“노무현의 피와 땀을 딛고 대통령이 되어서 한 세상 잘 살고 있는 양반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하고, 그게 한 나라의 최고 공직자로서는 바람직한 일이 아니지” “후보 때부터 자기 말에 대한 책임이 없는 사람인데, 대통령이 돼서도 자기 말에 대한 책임이 없어”….

고종석이 전하는 ‘인물평’도 인상적이다. 그는 말싸움을 가장 잘하는 사람으로 유시민을, 글싸움에서 첫손에 꼽히는 논객으론 진중권을 꼽는다. ‘조국 수호’를 위해 성명까지 발표한 문인들, 특히 소설가 황석영을 거론하면서는 “지식인의 종말이라는 생각도 든다”며 안타까워한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도 최근 펴낸 ‘강남 좌파 2’(인물과사상사)를 통해 가차 없는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조국 사태는 문재인 사태였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지난 8월 여론조사들에선) 조국 임명 반대 의견이 찬성보다 2배 이상 많았다. 반대에 문재인 지지자들의 상당수도 가담했다는 걸 의미한다”며 이렇게 말한다. “(문 대통령이) 생각을 바꾸지 않자 지지자들은 ‘조국 사태’를 ‘문재인 사태’로 인식하고 ‘문재인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이 희대의 ‘국론 분열 전쟁’에 참전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전쟁의 명분으로 ‘검찰 개혁’이 과도하게 부풀려진 상태로 등장한 것이다.”

알려졌다시피 강 교수는 한국 사회에 ‘강남 좌파’라는 용어를 퍼뜨린 주인공이다. 강남 좌파는 학력이나 소득 수준은 높지만 정치적으로는 좌파 성향을 띤 사람을 가리킨다. 한데 이 용어는 언젠가부터 한국 정치의 핵심을 이해하는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강 교수는 조국 사태로 위선에 둔감한 강남 좌파, 나아가 진보 진영의 문제가 드러난 만큼 “진보의 의제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어지는 그의 주문은 올여름 국내에도 출간된 미국 경제학자 리처드 리브스의 ‘20 VS 80의 사회’(민음사)에 담긴 내용과 비슷하다. 불평등의 구도를 상위 1% 슈퍼리치와 나머지 99%로 나누지 말자는 것, 지금처럼 상위 20%가 계속해서 기회를 사재기한다면 한국 사회의 온갖 문제는 백년하청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실려 있다. “10%나 20%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외치는 ‘1% 개혁’은 가능한 걸까. 10%나 20%에 속하는 사람들이 ‘나도 양보했는데 왜 당신들은 양보하지 않으려는가’라는 당당하고 공평무사한 자세를 가질 때에 비로소 ‘1% 개혁’도 가능한 게 아닐까.”

사진=뉴시스

진중권 동양대 교수도 최근 신작을 내놓았다. 3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조영남 그림 대작 사건’의 기승전결을 살피면서 조영남을 변호한 ‘미학 스캔들’(천년의상상)이다. 조국 사태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서문엔 이번 사태와 관련된 그의 관전평이 짤막하게 담겨 있다.

“조영남 사건을 겪으면서 대중과 소통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로부터 어언 3년, 또다시 눈앞에서 권력이 언론과 대중을 동원해 연출하는 거대한 파국을 본다. 불의를 정의라 강변하는 저 거대한 집단의 맹목적인 힘 앞에서 완벽한 무력감을 느낀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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