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삼국시대 촉(蜀)을 세운 유비는 세상을 떠나며 “북방을 수복하라”고 유언했다. 이를 받든 제갈량이 군사를 이끌고 위(魏)를 정벌하러 떠나는 날 아침 황제 유선에게 글을 올렸다. “원컨대 신에게 토벌의 일을 맡기시고 공을 이루지 못하거든 신의 죄를 다스려 선제의 영전에 고하십시오.” 이렇게 끝나는 그의 ‘출사표(出師表)’는 문장이 간결하고 명료해 진(晉)의 이밀이 무제에게 올린 진정표(陳情表), 당(唐)의 한유가 쓴 제십이랑문(祭十二郞文)과 함께 3대 명문으로 꼽힌다. 이 글을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충신이 아니라 했을 만큼 국정을 염려하는 간곡한 마음이 담겼다.

제갈량의 출사표는 전쟁에 나서며 각오와 당부를 기록한 글인데, 세월이 흐르면서 전쟁처럼 치열한 일에 투신하는 행위나 그럴 때 꺼내는 말을 뜻하게 됐다. “강석호 유기준 의원이 원내대표 경선에 출사표를 던졌다”거나 “금융투자협회장 선거에 4명의 출사표가 이어졌다”고 하듯이 선거는 대표적 용례로 자리를 잡았다. 정치판에 출사표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내년 총선에 나서는 많은 이들이 각오와 구상을 한창 다듬고 있을 것이다. 좀 이른 감이 있는데, 며칠 전 출사표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본인에게 물으면 아니라고 할 테지만 읽는 사람은 누구나 “출마하는군” 했던 문장이 공개됐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 SNS에 ‘흑석동 집을 팝니다’란 글을 올렸다.

그는 투기 의혹을 받은 재개발구역의 27억원대 건물을 팔고 차액을 기부하겠다고 했다. 문재인정부의 성공에 필수적인 부동산 정책 신뢰도를 위해 다시 무주택자로 돌아간다는 거였다. 국정을 염려하는 간곡한 마음이 담긴 글의 구성이나 이튿날 라디오에서 “제게 쓰임새가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며 출마를 시사한 점을 감안하면 출사표라 불러도 무방하지 싶다. 그가 큰 빚을 감수하며 투자한 구역이 관리처분을 무사히 통과하고 분양가상한제까지 피하자 인터넷의 부동산 호사가들은 그를 ‘흑석 김 선생’이라 불렀다. 이런 비아냥거림 속에서 출사(出師)의 각오와 진정성을 내보일 방법은 그 경제적 이익을 포기하는 것뿐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가족과 함께했을 고뇌의 시간을 생각하면 가장 강한 카드를 꺼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니 이것은 아주 비장한 출사표인 셈인데, “집을 팝니다”란 제목에서 자꾸 헛웃음이 나오는 건 왜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색적인 출사표를 읽었다.

태원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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