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흥호 총장의 성경과 선교] ‘하나님 형상’ 회복을 위해 낮은 곳에서 헌신하자

<31> 선교적 삶의 목적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빌딩에서 지난해 5월 열린 ‘2018 ACTS 세계지역연구소 포럼’에서 정흥호 아세아연합신학대 총장(왼쪽 다섯 번째)과 선교학자들이 함께했다.

믿는 자들에게 요구되는 삶이란 어떤 특별한 윤리·도덕적 기준을 정해 놓고 단지 그것을 지키느냐 지키지 못하느냐의 율법적 판단을 뜻하지 않는다. 정해진 법을 지켜야 하는 것은 당연하며,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에 들어가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창세 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거룩하고 흠 없게 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엡 1:4)이며 이를 알고 삶 속에서 실천해 가야 한다.

이는 곧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며 진리를 믿는 믿음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살후 2:13) 변화된 삶은 전적으로 믿는 자 안에서, 믿는 자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인 것이다. 이것은 성령의 사역이며 동시에 인간의 반응을 포함하고 있다.(고후 7:1)

이것은 ‘지금 여기서’(here and now) 경험돼야 한다. 믿는 자들의 변화된 삶은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믿는 자 안에서, 또한 믿는 자를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의존하고 반응을 보이는 데서부터 믿는 자들의 삶이 시작된다. 따라서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책임은 불가분리의 관계성 속에서 이해돼야 한다.

인간의 반응이 동시에 요구된다면 어떤 것들일까. 첫째, 겸손이다. 이미 하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낮은 자의 모델을 보여 주셨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까지 겸손히 섬기시는 본을 보여 주셨다.(마 20:28) 겸손한 자의 모습이 아니라면 선교의 출발점부터 잘못된 것이다.

둘째,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 자신을 즐겁게 하지 않았다고 했다.(롬 15:3) 산상수훈의 말씀을 통해 모세의 율법(출 21:24~25)과 같지 않은 새로운 법을 주셨다. 당시 통상적으로 생각하던 개념을 초월해 적극적으로 사랑을 나타내라고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 사랑을 체험해 보지 못하면 다른 이들에게 그런 경험적인 사랑을 전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셋째, 기도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의 생활습관을 통해 기도의 본을 보여 주셨다. 또 그렇게 기도할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있다.(마 6:9~13) 기도는 어느 종교에나 있는 것 같은 주문이 아니다. 그 안에는 하나님과 이웃의 관계에 대한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넷째, 하나님의 말씀은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계시, 현존하심,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접촉점을 제공한다. 이들은 의의 병기인 진실한 말씀과 하나님의 권능 안에서 모든 일을 견뎌 나갈 수 있게 하는 능력을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의 투구이며, 악한 것을 대적할 수 있는 영의 검이며(엡 6:17),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롬 1:16) 그것은 살아 역사하는 말씀이며,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가 들어 있다. 믿는 자들을 의의 길에 들어설 수 있도록 가르치고 깨닫게 하는 능력이 있다.(히 4:12)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어떤 상황에서든지 영적 싸움과 유혹으로부터 승리할 수 있다.(마 4:1~11)

다섯째, 승리의 영적 삶을 위해서는 헌신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롬 6:13) 헌신은 성령 충만과 연관이 있다. 거룩한 삶의 최종 목적은 하나님께 대한 영광 외에 다른 어떤 것이 될 수 없다.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실 분이시며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것에도 우리는 영광을 돌릴 수 없다.

현대 인류사회는 감각적인 가치와 정신, 인간들이 만들어낸 물질적 가치에 점점 더 사로잡혀 가고 있다.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역할은 더욱 중요시된다. 이에 대한 분명한 자각이 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뜻에 맞는 바른 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책임은 다른 어느 때보다도 강조된다. 서구 사회를 비롯해 범세계적으로 살인 자살 알코올중독 마약중독 동성연애 등등 사회적 부도덕이 만연하고 있는 사실은 인간이 추구하는 목적이 물질적 번영이나 안락한 삶에 있지 않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롬 12:2) 문명이 발달한다고 해서 인간이 추구해야 할 영적 욕구를 만족시켜 주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인간은 이미 과학 발달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인류의 타락과 부패가 늘어나고 있음을 여실히 체험하고 있다. 특히 서구 문명화의 뒤를 좇는, 소위 다수 세계의 나라는 서구가 문명화되고 물질적인 부를 누리면서 겪었던 실수를 답습하고 있다.

이는 결국 경제적 만족이나 물질문명의 발달이 결코 인간의 영적 갈급함을 채워줄 수 없음을 보여준다. 목적과 수단이 바뀌므로 자아감을 상실하고 잘못된 문화에 스스로 종속돼 가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런 세계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줘야 한다.

정흥호 아신대 총장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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