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에서 번식하다 한반도에서 월동하기 위해 충남 서천군 금강 하구를 찾은 수많은 가창오리가 노을 진 하늘에 드리워진 구름 사이를 회오리바람처럼 뚫고 지나가는 형상의 환상적인 군무를 펼치고 있다. 금강 하구는 겨울이면 50여 종, 80만여 마리 새가 몰려드는 ‘철새의 낙원’이다.

삶이 바쁘다고 여행도 분주할 필요는 없다. 자연과 생태가 살아있는 충남 서천은 지친 몸과 마음에 휴식을 선물한다. 금강 물줄기를 따라 모인 철새와 하늘하늘 흔들리는 갈대가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을 풀어놓고 한적한 걷기 길은 여유를 내놓으며 낭만과 힐링을 가져다준다.

늦가을부터 겨울을 지나 이른 봄까지 서천 여행의 한 획은 탐조(探鳥)투어다. 철새의 낙원으로 알려진 금강호에 겨울이면 50여 종, 80만 마리 철새가 몰려든다. 서해안의 넓은 갯벌과 습지, 갈대숲, 농경지 등이 어우러져 철새의 보금자리를 만들어낸다. 가창오리와 큰고니, 개리 등 천연기념물과 쇠기러기, 청둥오리, 흰갈매기 등 다양한 철새가 모여든다.

압권은 기러기목 오릿과에 속하는 가창오리다. 시베리아 지역에서 번식하다 한반도에서 월동하는 철새로 국제적으로 보호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멸종 위기 동식물 2급으로 지정돼 있다. 몸길이는 30∼40㎝, 날개는 20㎝로 철새치고는 몸집이 매우 작은 편이다.

저물녘 금강 하구에 땅거미가 내려앉으면 수십만 마리 가창오리는 뭉치고 펼치기를 반복한 뒤 화선지에 먹선을 그리듯 비행하며 서천 또는 전북 군산 들판으로 이동해 먹이활동을 한다. 가창오리의 화려한 군무(群舞)는 지켜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서해안 낙조를 배경으로 원 모양을 하다가 금세 럭비공 모양으로 바뀌고 활짝 펼친 그물처럼 넓게 또는 기러기 떼처럼 길게 무리를 지어 날아가기도 한다. ‘금강의 피카소’인양 하늘에 추상적인 그림을 자유자재로 그려낸다. 가창오리들이 군무를 추는 것은 천적으로부터 개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몸집이 작아서 독수리 같은 포획자로부터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덩치가 큰 새로 위장한다는 것이다.

금강변에 서천군 조류생태전시관이 자리한다. 이곳에서 철새와 주변에 대해 공부할 수 있고 망원경으로 철새도 관찰할 수 있다. 멀리 수면에 앉은 듯 헤엄치며 부리를 주억거리거나 날개를 퍼덕이는 철새들이 바로 눈앞에 다가선다.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에서 잠시 물러나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한 느린 여행도 필요하다. 리트릿(retreat)이 하나의 방법이다. 휴식을 통해 삶의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여행이다.

문헌서원에서 진행된 ‘슬로 리트릿’ 요가.

서천군이 현대인을 위한 ‘슬로 리트릿’ 여행을 선보였다. 힐링 요가 및 사운드·아로마 테라피, 갈대밭 산책, 한산소곡주 빚기, 한산모시짜기 체험 등이 프로그램이다. 하루 한두 개 정도의 느긋한 일정으로 1박 2일이나 2박 3일 프로그램 위주로 진행됐다. 추위가 찾아오면서 아쉽게도 올해 프로그램은 종료됐다. 내년 3월쯤 다시 시작될 예정이다.

서천군 기산면에 있는 문헌서원(文獻書院)은 서천8경 중 하나다. 1575년(선조 8년)에 한산군수 이성중과 지방 유림이 뜻을 모아 효정묘(孝靖廟)를 짓고 고려 말의 대학자 가정 이곡(稼亭 李穀)과 목은 이색(牧隱 李穡)의 학문과 덕행을 기렸다. 정유재란 때 불에 타 없어진 뒤 1610년(광해군 2년) 한산 고촌(枯村)으로 옮겨 복원됐다. 다음 해 광해군이 문헌서원이라는 현판을 내려 사액서원이 됐다. 1871년(고종 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毁撤)된 뒤 1969년 뜻 있는 유림에 의해 지금의 위치에 재건됐다.

문헌서원 뒤에는 울창한 솔숲이, 앞과 옆에는 넓은 잔디밭이 있다. 문헌서원 옆으로 멀찌감치 이색의 묘소도 보인다. ‘천년솔바람길’을 산책하면 몸과 마음의 긴장이 풀리고 한가로운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문헌서원에서는 요가와 명상이 진행됐다.

신성리 갈대밭 스카이워크를 걷는 여행객.

가까운 곳에 신성리 갈대밭이 있다. 금강하구에 자리한 갈대숲은 너비 200m, 길이 1.5㎞에 이른다. ‘공동경비구역 JSA’ ‘미안하다 사랑한다’ ‘추노’ 등 여러 영화·드라마의 배경이 됐던 곳이다. 작은 바람에도 서걱대는 갈대숲길을 따라 산책하노라면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하다.

한산모시관은 한산모시를 처음 생산했던 건지산 기슭에 모시각, 한산모시 전시관, 토속관 등의 시설을 갖춰놓아 서천의 전통문화와 한산세모시 제작 과정을 알려준다. 이곳에서 모시팔찌 짜기 체험이 이뤄졌다.

부드러운 산과 잔잔한 저수지를 따라 걷는 봉선저수지 물버들길 산책도 마음을 포근하게 해준다. 봉선저수지에도 다양한 새들이 찾아든다.


▒ 여행메모
문헌서원 전통 한옥 숙박 ‘조용·여유’
서천 특산품 김을 이용한 김굴탕 ‘별미’


충남 서천은 서해안고속도로와 서천공주고속도로는 물론 국도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갈 수 있다. 금강하구로 가려면 서천공주고속도로 동서천나들목에서 빠져 국도 29호선을 이용하면 된다.

문헌서원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휴관일은 1월 1일, 추석(음력 8월 15일), 설날(음력 1월 1일),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이면 다음날)이다. 관람 시간은 11월∼2월의 경우 오전 9시∼오후 5시다. 관람 시간 종료 30분 전까지 입장할 수 있다.

문헌서원에 가면 전통 한옥에서 숙박할 수 있다. 서원 안에 연중무휴로 운영되는 문헌전통호텔이 있다. 각 채에 객실을 두 개만 배치해 조용하고 여유 있게 쉴 수 있다. 봉선지 물버들체험마을에는 펜션형 숙박시설이 운영된다. 종천면의 희리산해송자연휴양림과 장항읍의 서천유스호스텔을 이용해도 좋다.

한산면소재지와 한산모시관 근처에 식당이 많다. 장항읍·서천읍·서면에 가면 여러 맛집이 있다. 서천의 특산품인 김을 이용해 만든 김굴탕이 별미다. 추운 날 몸을 녹이기에 그만이다.

서천=글·사진 남호철 여행전문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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