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환 목사의 영적 장자권을 회복하라] “빚에 시달리느니 시골로 내려갈까”… 교회 포기할 위기

<15> 절제·인내의 10년, 이후 찾아온 축복

이영환 대전 한밭제일장로교회 원로목사는 1980년 교회 개척 후 2년만에 예배당을 건축했지만 10년 넘는 연단의 시간을 거쳤다. 이 목사가 숱한 시련을 기도로 극복하고 97년 10월 건축한 대전 관저동 새 예배당.

연단의 담금질은 3년 동안 계속됐다. 물질 문제, 사람 문제, 환경 문제 등 걷잡을 수 없는 폭풍우가 휘몰아쳤다. 하나님은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 속으로 사정없이 몰아넣으셨다.

1990년 모든 훈련이 끝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시간표였고 나는 하나님의 시간표를 미리 볼 만큼 영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기에 조금은 지쳐 있었고 사탄은 그 틈새를 이용해 유혹하고 있었다.

사탄은 슬그머니 내 마음속에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집어넣었다. ‘그래, 너는 본래 시골이나 낙도에 가서 노인 30명 목회하려고 하지 않았느냐. 너 같은 것이 대전이란 도시에서 목회하는 것, 이건 분수에 맞지 않아. 그러니 여기서 포기하고 시골이나 낙도로 가. 그것이 네가 살 길이야.’

사탄이 준 참소에 자아가 속절없이 반응하며 떠내려가고 있었다. ‘그래 맞아, 나 같은 존재가 무슨 도시 목회야. 시골이나 낙도에 가서 노인 30명 목회만 하면 되지.’

이렇게 사탄의 속삭임을 분별하지 못한 채 교계 신문에 보낼 글을 쓰고 있었다. 후임자를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거기에 한밭제일장로교회 형편을 자세히 썼다. 당시 우리 교회는 땅값, 건물값을 포함해 시가로 2억~2억5000만원 정도 나가는 상태였다. 그 상황에서 내가 1억원의 빚을 지고 있으니까 어느 목사님이든지 1억원으로 교회를 물려받고 빚을 청산해 줄 후임자를 물색한다는 내용이었다.

글을 다 써 놓고 나니 한편으로는 서운했지만, 한편으로는 홀가분했다. 글을 써 놓고 최종적으로 하나님 앞에 결정을 맡기며 기도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선 그 길을 막아주셨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하나님의 1차 훈련은 거기까지였는데, 내 영적 시야가 멀리 높이 깊게 볼 수 없었기 때문에 혼돈 속에 빠져 있었다. 하나님은 그해가 가기 전에 정말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해주셨다. 1년 뒤엔 모든 물질 문제를 다 해결해 주셨다.

그것으로 연단이 다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하나님의 연단 계획표에 훈련은 아직 끝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아직도 내게 더 연단할 무엇이 있으셨는지, 1982년 개척한 지 2년 만에 지었던 165㎡(50평) 1층과 330㎡(100평) 2층 예배당에 계속 머물게 하셨다.

87년 당시 아이와 어른을 포함해 300명 정도 출석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10년간 추가 연단을 받는 동안 300명의 성도는 늘지도, 줄지도 않고 그대로였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거나 생각했을 수 있다. ‘기도 좀 한다는 이영환이? 한밭제일장로교회? 그럼 그렇지, 지가 뭔 대단하다고 무슨 한밭제일교회야.’

그러나 나는 10여년 동안 교회가 정체돼 있을 때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훈련을 시키시며 깨닫게 하신 ‘범사에 감사,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감사’를 계속 올려드리고 있었다. 시편 136편 감사장을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묵상하고 암송하면서 하루를 출발했다. 신기했다. 무엇이든 감사라는 보자기에 들어가면 다 변화되는 신기한 말씀의 위력이었다.

교회가 부흥되지 않는다고 초조해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낙심하거나 절망하지도 않았다. 수시로 기도하면서 주님과 함께 깊은 사랑의 대화를 나눴다. 새벽 일찍 일어나고, 밤 늦게까지 기도하면서 자주 금식했다. 그렇게 주님과 정말 깊고도 진한 사랑의 밀어를 나누고 있었다. 지나고 보니 하나님은 내게 인내와 절제의 훈련을 시키고 계셨다.

기도 중 예배당을 도시가 새로 개발되는 관저동으로 옮기라는 감동이 있었다. 97년 10월 하나님께서는 도마동에서 4㎞ 떨어진 관저동에 성전을 건축해 교회를 옮기게 해주셨다. 10여년 동안 하나님은 절제와 인내를 훈련시키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4059㎡(1228평) 부지에 1652㎡(500평)의 성전을 건축하게 하셨다.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놀라운 현장을 체험했다. 이웃 교회와의 문제였다. 우리가 성전을 건축하는 그 자리에서 100m쯤 뒤쪽에 오래전부터 있던 감리교회가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장로교회이고 맞은편이 신개발지역이니 가까이 교회가 있는 게 그리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신경을 쓰긴 했는데, 그 근방에 땅이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처음에 우리교회가 그쪽에 성전을 건축한다는 말을 듣고 그 감리교회 성도들이 주일예배 후 나를 찾아왔다. 내가 그분들께 사정을 잘 말씀드렸고, 그분들도 이해하고 돌아갔다. 문제는 교회를 건축할 때 일어났다.

지하실 공사를 마치고 1층 공사를 시작할 때였다. 아무래도 이웃교회 목사님께 인사는 드려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감리교회 성도님들은 봤지만, 담임목사님은 뵙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47살이었고, 그 감리교회 목사님은 60이 조금 넘었다.

들어가서 인사를 드렸는데, 감리교회 목사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주님의 거룩한 교회가 오니까 감사하네. 그런데 솔직히 젊은 목사가 그것도, 기도 열심히 하는 교회가 앞에 온다고 하니까 내가 좀 부담스럽다.”

이영환 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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