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창-박세환] 오보를 위한 변명

보도자료와 브리핑만으로 쓰면 무늬만 기자이고 정부도 편해… 그러면 피해는 누가 보는가


수습 시절 선배들은 “너, 이거 진짜 맞아?”라고 반복해 물었다. ‘술에 취한 손님이 택시기사를 폭행해 입건됐다’는 면피성 보고 하나에도 선배들은 사소한 부분까지 다시 확인하라 했다. 한쪽 말만 듣지 말고, 상대방 얘기도 귀 기울이라 가르쳤다. 오보를 막기 위한 훈련이었다. 기자에게 오보는 치욕이다. 사실관계가 완전히 틀렸거나 없던 일을 있던 것처럼 쓸 경우 기자가 책임져야 한다. 부당한 피해자가 나오고 회복 불가능한 명예훼손이 발생할 수 있으니 항상 조심해야 한다.

대부분의 기자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오보가 범람하는 건 아마도 취재 경쟁 탓이다. 게이트급의 큰 사안이 펼쳐지면 데스크의 압박이 심해진다. 어디가 단독인지 모르겠는 기사가 특종의 꼬리표를 달고 쏟아진다. 조그마한 팩트를 부풀리거나 일부 취재원의 말만 듣고 사실인 것처럼 쓰게 되는 경우가 있다. 세월호 참사와 성완종리스트 국면, 조국 사태 때가 그랬다. 당시에는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엔 틀린 정보가 많았다. 기자 개인의 부주의라기보다는 우리네 언론 환경이 척박한 탓이다. 어쨌든 욕 먹어야 한다.

그런데 현장에서 뛰다보면 오보가 아닌 게 오보처럼 되는 경우가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아침마다 열리는 회의에서 언론 모니터링을 하고, 보도된 기사를 어떻게 하면 오보로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한다”고 했다. 정부가 어떤 정책을 추진한다는 기사에 대해 ‘논의된 바 없다’고 밝히는 경우다. 분명 물밑에서 회의하고 정부 차원에서 준비 중인 게 맞았다. 다만 보도가 나오니 “(100%) 확정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다는 걸 증명하려면 정부 내부 문서 등의 깔끔한 증거가 필요하다. 근데 이런 자료를 보도하면 ‘국기문란 행위’라 한다. 십상시 보도가 그랬다. 검찰은 해당 문건을 유출한 인원을 기소하고 문건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발표했다. 뒤늦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자 정부가 오보라 단정했던 기사는 결국 사실로 드러났다.

여전히 상황은 비슷하다. 청와대 기자들 사이에서 농담처럼 도는 얘기가 있다. 청와대 공보라인의 반응을 보면 해당 기사의 신뢰도를 대강 평가할 수 있다는 거다. “확인해 드릴 수 없다”면 90% 이상 맞는 기사다. 국민소통수석이나 대변인, 춘추관장이 아무 입장을 내지 않거나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으면 얼추 맞는 것으로 보면 된다.

“사실과 다릅니다”라는 PG(press guideline·언론대응지침)가 나온다면 기사의 신뢰도는 50% 수준으로 떨어진다. 여기에 ‘전혀’라는 부사가 들어가면 기자들은 오보로 받아들인다. 다만 청와대는 기사의 어떤 부분이 사실과 다른지 상세히 밝히지 않는다. ‘국가 이익을 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두루뭉술하게 넘어간다.

예를 들어 청와대 국가안보실 소속 A씨가 판문점에서 북한 측 관계자 B씨와 만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논의했다는 기사가 나왔다고 가정해보자. 청와대는 이를 부인하면서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한다. 이때 A씨가 아니라 다른 비서관이나 수석이 간 건지, 북측에서 나온 인사가 B씨가 아니라 C씨인지, 남북 실무자 간 김 위원장의 방남이 아니라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사전 논의를 한 건지 명확히 설명하지 않는다. 여러 팩트 중에 하나만 틀려도 청와대는 부인하고, 해당 기사는 오보처럼 된다.

기자 개인의 부주의나 언론사 차원의 설익은 지시가 낳은 오보는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정보 비대칭성에 의해 무분별하게 규정된 오보는 좀 억울하다. 앞서 법무부는 새로운 공보규칙을 만들면서 오보를 낸 언론의 검찰청사 출입을 금지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가 철회했다. 오보를 누가,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지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검찰 판단으로 정당한 취재를 막을 수 있다는 비판이 컸다.

사실 오보도 열심히 하는 기자나 쓴다. 가만히 앉아서 보도자료와 브리핑만 처리하면 오보 낼 일도 없고 편하다. 출입처도 좋아하고 모두가 행복하다. 사실 아무도 행복하지 않다. 지면과 전파를 축내는 그런 무늬만 기자(브로커)가 되지 않기 위해 죽기 살기로 뛰어야 하는 것이다. 정부도 불리한 기사를 막으려고만 하지 말고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한 언론관을 고민해야 하지 않나 싶다.

박세환 정치부 기자 foryou@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