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성장의 아이콘이자 ‘빨리빨리’로 유명한 우리나라지만, 커피 문화의 성장 속도 역시 놀랍다. 한 건물에 카페가 여럿인 것이 어느새 자연스럽고, 중독을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인 나 역시 주변에서 중독자라고 놀릴 만큼 커피를 달고 사니 말이다. 커피의 발견 자체가 칼디(Kaldi)라는 목동이 커피콩을 먹은 염소들이 기운이 넘치는 것을 보고 졸음과 싸우는 수도승들에게 알려주면서 시작되었다는 설이 있으니, 커피를 즐기는 것에는 애초부터 뇌와 몸의 힘을 북돋으려는 목적이 있다고 봐야겠다. 그렇지만 서구의 커피 문화와 우리나라의 그것에는 조금 다른 결이 느껴진다.

전통적으로 ‘카페’라는 장소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는 휴식이자 선물 같은 시간, 지인들과의 편안한 담소, 때로는 다양한 토론의 장이었다. 그런데 우리 도심에서는 24시간 카페에 추가 샷을 부어가며, 공부든 일이든 자신의 평상시 역량을 벗어나는 성과를 내려는 애씀의 단면이 보인다. 물론 지인들과의 편안한 자리나 홀로 자신을 위한 시간과 공간으로 카페를 찾기도 하지만, 직장가 주변 다닥다닥 붙어선 테이크아웃점에 점심시간이면 어김없이 길게 늘어선 인파는, 여유보다 최소한의 시간으로 최대한 버텨내야 하는 독한 사회의 상징 같다. 과거 전통 차 문화와는 시대 자체가 다르니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겠지만, 잠 깨고 일하려면 ‘봉다리 커피’가 최고라는 어르신들의 농담 속에도 여유가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이 악물고 노력하는 국민의 힘이 우리 사회가 일제 강점기와 전쟁, 외환위기 등을 이겨내는 원동력이 되어왔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한순간도 브레이크 없이 ‘사약 같은 커피 사발’로 온 정신을 갈아 넣고, 내가 아니면 남의 힘을 쥐어짜서라도 달려야 한다는 분위기가 안쓰럽다. 경기 중 ‘부상 투혼’ 운운하며 몸이 망가져도 멈추지 않는 선수에게 환호하며, 모든 분야에서 생명을 갈아 넣는 노력을 하는 것이 과연 건강한 사회인가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그런 미심쩍음과 별개로 나 역시 오늘 진료를 마치면 병원 옆 카페를 참새 방앗간처럼 들를 것이다. 하지만 오늘이라도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마셔봐야겠다. 이 순간마저 100m 달리기하듯 시간에 쫓기지 말고.

배승민 의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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