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연말 기업 인사 뉴스 중 가장 인상적인 소식은 미국에서 들려왔다. 구글 공동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고 깜짝 발표한 것이다. 이들은 1998년 구글을 창업했다. 두 사람은 73년생 동갑내기다. 구글은 이제 21살, 두 사람은 46세다. 은퇴를 이야기하기엔 너무 이른 시기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물러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싶어서 인터넷을 뒤져봤지만 도달한 결론은 담백했다. 물러날 때가 됐다는 것이다. 이들이 자신의 역할이 끝났다고 판단한 건 현재 알파벳이 추진 중인 신산업의 방향이 결정됐고, 상용화를 위해 열심히 달리기만 하면 된다고 봤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구글은 전 세계 검색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2006년 인수한 유튜브로 동영상 시장까지 집어삼켰다. 여기에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로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압도적인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현재는 구글 천하다.

2015년 알파벳이 출범하면서 두 사람의 미래 신산업 찾기는 보다 구체화됐다. 페이지와 브린은 퇴임사에서 알파벳의 미래 사업을 언급했다. 두 사람은 “‘웨이모’는 수백명의 피닉스 지역 거주자에게 자율주행 서비스를 하고 있고, ‘윙’은 미국 최초의 상업용 배달 드론 서비스가 됐다. 장수를 연구하는 ‘캘리코’와 제약 연구를 하는 ‘베릴리’는 헬스케어 업체들과 협업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신산업의 기반을 다졌고 방향을 설정한 만큼 이를 키우는 것은 현장 전문가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잔소리하는 부모 역할은 그만할 때”라고 재치 있는 말로 퇴임의 변을 갈음했다.

이들은 자신들을 대신해 회사를 이끌 리더로 인도계 순다 피차이 CEO를 선임했다. 크롬 브라우저를 개발해 마이크로소프트(MS) 익스플로러의 아성을 무너뜨렸고, 2013년부터 안드로이드를 맡아 스마트폰 시장의 절대 강자로 키워낸 업적을 인정한 것이다. 차고에서 창업한 미국 청년들이 인도에서 대학을 나온 이에게 회사를 맡기는 것도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미국 IT 기업에서 창업자가 가족이 아닌 인물을 후임으로 선택하는 건 낯설지 않은 광경이다. MS는 빌 게이츠가 물러나면서 스티브 발머를 후임자로 세웠고,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팀 쿡을 지명했다. 두 사람 모두 혈연관계가 아닌 건 당연하다. 기준은 회사를 나보다 더 잘 키울 사람일 뿐 가족인지는 중요치 않다. 물론 후임자가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발머는 모바일 시장에 뒤늦게 대응하는 바람에 MS를 위기로 몰아넣었고, 후임인 사티아 나델라가 부임하고서야 MS는 반등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연말 인사 소식이 들려온다.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은 모두 동일하다. 미·중 무역분쟁, 일본의 소재 수출 규제 등 외부 환경 탓에 전례없는 불확실성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해법은 제각각이다. 불확실성이 클수록 안정이 우선이라며 CEO를 유임시킨 곳이 있고, 반대로 혁신해야 한다며 새 인물을 내세운 곳도 있다. 아직 인사를 하지 못한 회사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을 변화시키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인사다. 임원 한 명만 바꿔도 조직 분위기가 달라지는데, CEO를 바꾼다면 회사 말단에까지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안정과 변화 중 어느 쪽이 회사에 효과적인 인사였는지는 내년 실적이 보여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내년 우리나라 대기업 중 가장 많은 변화를 하게 될 곳은 GS그룹일 것으로 보인다. 허창수 GS 회장이 임기를 2년가량 앞두고 물러났기 때문이다. 조직에 변화를 촉진하기 위한 것이다. 허 회장의 용퇴를 두고 ‘아름다운 퇴장’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아들이 아닌 동생에게 경영을 맡기는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 회장의 퇴진이 정말 아름다운 것은 승계문제에 대한 선택 때문이 아니라 변화가 필요하다면 자신을 던져서라도 회사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는 점에 있다.

김준엽 산업부 차장 snoop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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