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 채점 결과가 나온 직후 한 교육 분야 시민단체 관계자로부터 기사 하나 다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는 카카오톡 메신저로 제보 내용의 개요와 이를 입증하는 자료를 보내왔다. 자료에는 공교육이 사교육에 ‘항복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는 현장들이 담겨 있었다. 고교 20곳에서 유명 사교육업체 관계자들을 초청해 입시 설명회를 열었거나 앞으로 개최할 예정이라는 내용이었다.

이 학교들도 부끄럽긴 했나보다. 어떤 학교는 외부에서 모르게 추진했다. 연사로 초빙된 사교육 관계자 정보를 고의 누락하는 ‘꼼수’를 쓴 학교도 있었다. 이 학교들 중에는 이른바 스카이(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를 많이 보낸다고 소문난 유명 고교들도 섞여 있었다. 시민단체가 확인한 내용이니 실제로는 더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익히 알려졌던 얘기였다. 그래도 기사 가치는 충분했다. 사례들이 생생했다. 입시 명문으로 알려진 고교들이 사교육업체에 안방을 내준 공교육의 현주소와 이를 활용해 학생을 끌어모으는 사교육이 있었다. 발로 뛰어 정성껏 만든 자료였다. 입시 시즌이어서 시의성도 있었다. 근거 사진이 있고 수치가 제시됐으며 문제 의식도 뚜렷했다. 무엇보다 수년 동안 기자와 취재원으로 신뢰를 쌓아온 인물의 요청이었다.

끝내 기사로 쓰지는 못했다. 이유조차 그 시민단체 활동가에게 말해주지 못했다. 아직도 카톡 대화창에는 ‘1’자가 사라진 말풍선과 첨부 자료들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외면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기자도 사교육업체들과 유착한 공범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기사 요청을 받고 올해 수능 이후 작성했던 입시 관련 기사들을 훑어봤다. 사교육업체 분석이 묻지 않은 기사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특히 매년 수능 당일에는 입시업체 분석을 모아서 이를 취합하는 작업을 반복해 왔다. 어제까지는 사교육업체 분석을 기사에 잔뜩 싣고서는 다음 날에는 사교육 관계자들을 초청해 입시 설명회를 연 고교를 비판하는 기사를 작성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년부터 사교육업체를 기사에서 뺄 자신이 있었다면 그 시민단체 관계자의 요청에 호응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녹록하지 않다. 반성만으로 해결되는 건 별로 없다. 50만명의 수험생과 그 가족들은 수능이 끝나면 어려웠는지 쉬웠는지 난이도를 가장 궁금해 한다. 또 어떤 영역이 당락을 좌우할 변수인지도 주목한다. 빠르면서도 정확한 내용을 말해주는 쪽으로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2012년부터 대입 관련 기사를 써오며 사교육업체보다 빠르고 정확한 곳을 아직 찾지 못했다.

예컨대 지난해 수능은 국어, 올해는 문과 수학(수학 나형)이 역대급으로 어려웠다. 그러나 수능 당일 출제 당국이나 공교육 영역에서 나온 분석은 “예년 수준이거나 조금 어려웠다”였다. 이 분석을 그대로 인용해 기사를 썼다면 “너가 풀어봐라 기레기”란 댓글이나 이메일을 받았을 것이다. 반면 사교육업체들은 시험 시간이 흐를수록 정확도 높은 분석을 내놓더니 해질 무렵에는 확신에 차 ‘불국어’ ‘불수학’이라고 입을 모았다.

유튜브도 입시 사교육업체들의 홍보 마당이다. 대학별로 학생부종합전형 대비 방법이나 수능 점수대별로 정시 지원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타깃은 다양하다. 입시 정보에 목마른 학부모를 겨냥해 입시 용어 설명부터 시작하기도 한다. “입시는 변수가 많으니 우리가 축적해놓은 노하우와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맞춤형 전략을 짜라”고 노골적으로 접근하지도 않는다. 동영상들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업체들과 연락을 해야 할 것만 같아진다.

사교육은 더 강성해질 것이다. 그들은 1993년 수능 도입 이래 꾸준하게 내공을 쌓고 있다. 공교육은 이미 경쟁에서 밀린 듯 보인다. 역대 최고치를 매년 갈아 치우는 1인당 사교육비 지출 규모가 이를 방증한다. 정확한 입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정부 말고는 사교육을 대적할 상대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정부는 입시 제도만 뜯어 고친다. 문재인정부에서만 대입이 세 차례 출렁거렸다. 지난달 발표된 ‘정시 40%룰’(서울 지역 16개 대학은 2023학년도부터 정시 40% 이상 의무 선발)은 문재인 대통령의 정시 확대 언급 38일 뒤 발표됐다. 교육 현장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담겼을 리 만무한 일이다.

정부를 공범으로 끌어들여 카톡에 대답하지 않은 변명을 늘어놨지만 뒷맛이 더 개운치 않다. 그 시민단체 관계자와 다시 웃으며 통화할 수 있을까.

이도경 사회부 차장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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