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남양주 모란공원에서 8일 열린 고 김용균 1주기 추모식에서 김씨 어머니 김미숙씨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 10일 충남 태안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 야간근무 중 석탄이송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사망한 채 다음 날 발견됐다. 연합뉴스

한국 사회에 ‘위험의 외주화’라는 묵직한 주제를 던지고 고(故) 김용균(당시 24세)씨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지났다.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본부의 하청업체 노동자였던 김씨는 지난해 12월 10일 밤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석탄 운반용 컨베이어 점검 작업을 하다 벨트와 롤러에 몸이 끼여 숨졌다.

김씨의 안타까운 사망 이후 정부는 긴급안전대책을 발표했고,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특조위)가 22개 권고안을 냈지만 여전히 일터 곳곳에서는 청년, 비정규직,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위험에 노출돼 있다. 작업 현장에서는 “바뀐 것이 없다”는 한탄도 나오고 있다.

8일 김씨의 1주기 추도식이 열린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김용균재단과 민주노총 등 92개 단체가 참여한 ‘고 김용균 1주기 추모위원회(추모위)’는 “시민·노동단체를 중심으로 촛불행진 등 추모 물결이 일고 있지만 1년이 지나도록 하청 노동자들의 근로 개선책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현실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동조합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가 최근 공개한 영상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지난 5~11월 촬영된 영상에는 태안화력 노동자들이 손전등을 켠 채 어두컴컴 먼지가 가득한 작업장을 둘러보는 장면이 들어 있다. 한국서부발전은 사고 직후 4개 안전 전담부서를 설치하고, 추가 예산을 들여 조명과 안전펜스 등 시설을 보강했다고 설명했지만 실제 작업현장에서 체감할 수 없다는 게 다수 노동자들의 주장이다.

석탄화력발전소 특조위가 지난 8월 발표한 22개 권고안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게 현장 목소리다. 권고안에는 연료환경설비 운전 및 경상정비 노동자 직접고용, 노무비 착복금지, 노동안전 위한 필요인력 충원, 사업주에 책임을 부여하는 안전관리체계 구축 등 내용이 담겼다.

김용균 1주기 추모위원회는 “발전소 내 발암물질 등 고독성 유해화학물질의 관리방안 개선 권고에 따라 기존 1, 2급 방진 마스크가 차단력이 더 좋은 특급 마스크로 바뀐 것을 제외하면 사실상 바뀐 것이 없다”며 “22개 권고안 이행을 점검할 정부 차원의 ‘이행점검위원회’를 꾸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정부가 김씨 사망 1주일 만에 내놓은 ‘태안화력발전소 사고 관련 관계부처 합동대책’도 크게 와닿지 않는다고 했다. 정부 대책은 사고 위험이 높은 근로 현장에서 ‘2인 1조 근무’와 설비 인접 작업 시 ‘정지 후 작업’을 의무화하는 내용이다. 정부는 지난 3월 ‘공공기관 작업장 안전강화 대책’을 통해 2022년까지 공공기관 산재 사망자를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2인 1조 근무를 공공기관 전체로 확대하고, 신입 직원이 혼자 위험성이 높은 작업을 할 수 없도록 했다.

하지만 예산과 인력 부족 문제로 2인 1조 근무가 쉽지 않다는 목소리가 많다. 주52시간제가 시행되면서 기존에 2명이 하던 작업을 1명이 하는 사례도 발견됐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자회사인 중진공파트너스의 시설관리 근로자들은 전국 6개 사업장에서 업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인력은 늘 부족하다 보니 2인 1조로 작업을 나갈 땐 중앙감시실을 비워두기 일쑤다. 휴가자가 있으면 2명이 하게 돼 있는 사다리 작업을 1명이 맡아야 한다. 근로자들은 “인사 사고 나지 않게 작업하라는 지침만 내려보낼 뿐 별다른 조치는 없다”고 말했다.

이곳 관계자는 “오히려 52시간 근무를 시행하면서 3명이서 하던 근무를 2명이 하게 됐다. 지하 비트(각 배관이 지나가는 공간)를 순찰하다 사고 나면 구해줄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인력 증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생긴 문제다.

저임금 고강도 노동인 탓에 인력 증원이 어려운 사례도 있다.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의 방역사들은 단독 업무를 하다 가축에 받쳐 사망하는 등 안전사고에 노출돼 있다. 이에 노조가 2인 1조 근무를 강력히 요구, 지난 7월부터 136명의 현장인력을 충원 중이다. 하지만 4차례 채용 채용공고에도 12명이 미달됐다. 무기계약직이라는 신분적 차별 때문에 중도 이탈하는 인력도 있다.

김필성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지부장은 “아프리카돼지열병처럼 초동 방역이 필요한 경우 즉시 현장에 나가 2인 1조로 일해야 한다”며 “현재 근무 조정 등을 통해 2인 1조 근무를 맞추고 있지만 향후 퇴사자가 발생할 것을 고려하면 언제까지 이 근무 형태를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특조위는 고용구조 개편, 근로현장 개선, 인력 증원 등을 권고했다. 하지만 예산 등 문제로 근로환경 개선 속도는 더딘 편이다. 안그라미 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사업국장은 “기획재정부에서 2인 1조 조치를 위해 1500명의 인력을 충원했다고 밝혔으나 어느 곳에 어떤 식으로 충원했는지 지난 국정감사 질의에서도 밝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특조위의 22개 권고안 이행, 산안법 재개정 등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개정된 산안법은 도급(하청) 규제 범위가 좁아 노동자 안전 보장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내년 1월 16일부터 시행되는 개정 산안법에는 김씨가 일했던 화력발전소 연료 설비 운전 작업은 도급 금지 대상에서 제외됐다. 황산, 불산, 질산, 염산의 4개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설비의 보수해체 작업으로만 도급을 제한했다.

사업주에게 책임을 묻는 처벌 수위도 낮은 수준이다. 노동계는 안전 조치 의무를 위반한 사업주에 대해 하한형을 도입할 것을 요구했으나 개정 산안법에 반영되지 않았다. 특조위는 중대 산재 발생 시 기업에도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권고했으나, 이마저도 제대로 논의되지 않는 실정이다.

김용균재단이 발표한 최근 10년간 대법원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2심 판결 현황 자료를 보면 산재사망사고에 대한 금고 이상의 형은 1468건이다. 이 중 금고·징역형은 단 6건(0.4%)에 불과했다. 산재사망노동자 1명당 평균 벌금도 450만원에 그쳤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실질적인 근로환경 개선을 위한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강정주 금속노조 노동안전국장은 “정부 대책은 이미 여러 번 나왔다. 안전조치를 하지 않는 기업을 처벌하는 등 실제 변화를 이끌어낼 개선책이 필요하다”며 “현장의 목소리를 제도에 반영해야 한다. 정부가 책임 있는 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위험의 외주화 문제는 계속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구인 조효석 기자 capta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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