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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시평-민세진] 교육이 교육적이지 않을 때


1958년 영국 사회학자이자 정치가인 마이클 영의 풍자적 이야기 ‘능력주의의 부상(The Rise of Meritocracy) 1870-2033’이 출판됐다. 능력주의란 단어가 탄생한 책이다. 이 책의 화자는 능력주의가 고도로 진전돼온 가상 국가에 살면서 2033년에 과거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진행한다. 마이클 영은 출생 신분으로 계급이 결정되던 전근대 사회를 벗어난 민주국가들이 능력주의와 대중적인 공교육의 결합으로 다시 극단적인 계급사회로 이행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2020년을 코앞에 둔 지금 세계 어디에서도 마이클 영이 책에서 그린 것 같은 모습의 계급사회를 볼 수 없지만, 그가 책을 쓸 당시 관찰하고 우려한 영국사회의 다음과 같은 모습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 같다.

“20세기 중반까지 현실적인 사회주의자들은 능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의 진보를 평등이라고 보았다. 문제는 그들 사이에서도 평등의 해석에 강조점이 다르고, 재능의 차이를 무시한 채 모든 사람들이 같은 종류의 학교에서 같은 기본 교육을 받도록 하면서 발생했다… 같은 교육을 받도록 하는 것에 대해 그들은 갖가지 이유를 든다. 아이가 미래에 어떻게 발달할지는 10대 초반에 알 수 없다든지, 경쟁적인 시험이 학부모와 학생에게 주는 압박감이 너무 크다든지, 아이가 어려서 낮은 능력으로 평가되어 열등한 교육을 받게 되면 늦게 꽃피는 아이일 경우 능력에 합당한 교육 경로로 옮겨가기 어렵다는 등이다. 하지만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는 교육적이라기보다는 사회적인 것이다. 똑똑한 아이들을 그렇지 않은 아이들로부터 분리하는 것이 계층 분할을 심화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아이들이 성별, 인종, 종교적 신념, 계층, 그리고 재능까지도 관계없이 뒤섞여 교육받아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마이클 영은 결과적으로 이러한 공교육은 능력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사실상 붕괴될 수밖에 없고 그 자리는 선별적인 교육체제로 대체된다고 예견했다. 이 과정에서 엘리트들은 그들이 사회주의자이든 아니든 지능과 교육여건을 대물림하면서 공고한 계급사회를 구축하지만 모든 과정과 결과를 ‘공정하게 불평등한’ 것으로 포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교육 회복을 외치면서 자녀는 특목고에 보내고, 특목고 폐지를 주장하면서 뒤에서는 조용히 국제학교나 유학을 권하는 한국사회 일부 엘리트의 표리부동한 행태가 반세기도 더 전에 영국인이 내다볼 수 있는 것이었다니 시공을 초월한 인간의 본성이 서글프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능력에 따라 직업과 소득이 배분되는 사회를 지향하지 않을 수도 없다. 직업과 소득이 능력과 달리 결정되면 낭비되는 인력 때문에 사회적 생산능력이 크게 저하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더 큰 위협은 인간의 능력 자체가 점점 필요 없어지는 것이지만 그러한 흐름에 저항하는 것이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만도 않을 것이다. 게다가 직업과 소득의 배분 기준으로 능력보다 나은 대안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개인의 선택 차원에서 보면 물론 적성이나 취향도 중요하지만 능력이 전제돼야 하기 때문이다. 능력 중심의 기준을 버릴 수 없다면 사회가 노력할 바는 계급사회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마이클 영이 노골적으로 간략화한 것처럼 능력이 지능과 노력의 합이고 지능과 노력할 여건이 어느 정도 물려질 수 있는 것이라면 능력주의 계급사회 출현은 출생에 의한 계급사회보다 덜 확실하기는 해도 가능성이 낮지 않다.

계급사회가 되지 않으려면 계층 간 이동이 활발해야 한다. 동시에 결과적 불평등이 대물림되지 않도록 소외계층에 대한 보육과 교육이 강화돼야 한다. 모두가 알고 있고 정책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노력된 부분이다. 어쩌면 외면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유효한 대안은 공교육 차원에서 수준별 교육을 대폭 시행하는 것일 수 있다. 집값 높은 동네로 이사하거나 비싼 학비를 내지 않아도 면학 분위기가 조성된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이 교육 기회의 평등 아닐까. 답답한 마음에 하나마나한 의견을 내본다.

민세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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