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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전재우] OTT 전쟁의 서막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인기를 얻을 때였다. 가족들이 불만을 토로했다. ‘응팔’을 볼 수 없어 친구들과의 대화에 낄 수 없다는 것이다. 난감했다.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유선 방송에 가입조차 안 했는데 드라마 한 편 보겠다고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묘안을 냈다. ‘티빙’에 가입하고 태블릿PC로 드라마를 보여줬다. 곧바로 다른 불만이 나왔다. 태블릿PC의 9.7인치 화면 크기 때문이었다. 가족들이 둘러앉아 보기엔 작아도 너무 작았다. 불만을 잠재울 방법은 또 있었다. 모바일 기기의 콘텐츠를 텔레비전으로 볼 수 있는 미디어 스트리밍 기기를 샀다. 유선 방송에 가입하면 쉽게 해결할 일을 복잡하게 한다는 비난에 미국에선 코드 커팅(cord cutting) 현상이 시작됐다는 장황한 설명으로 응수했다. 그 후로 인기를 얻는 드라마는 거의 케이블 방송에서 나온 듯싶다. 가족들의 티빙 이용시간이 늘었다. 4년이 지난 지금은 집에서 텔레비전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셋톱박스를 놓지도 않았는데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OTT(Over the Top)는 생활 깊숙이 들어왔다. 각자 취향대로 스마트폰으로 보고 싶은 영상을 본다. 이용하는 서비스도 다양하다. 유튜브 카카오페이지 네이버TV 넷플릭스 등을 넘나든다.

지상파 방송은 거의 보지 않는다. 주말 예능이나 시사 프로그램 정도만 시청한다. 그조차도 내용이 별로면 채널을 돌리거나 전원 버튼을 눌러버린다. 최근 인기를 얻은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도 넷플릭스로 봤다. 굳이 ‘본방 사수’를 하지 않아도 편한 시간에 연달아 볼 수 있어서다. SK텔레콤과 지상파 3사가 옥수수와 푹(POOQ)을 통합해 지난 9월 ‘웨이브’를 내놓았다. 지난달 이용자 수가 400만명을 넘었다고는 하지만 평가는 혹독하다. 사용자들은 옥수수에서 보던 무료 영화 콘텐츠는 추가 결제로 바뀌었고, 볼만한 영상도 없고 광고만 늘었다고 한다. 안정성도 낮아 영상이 끊기거나 앱이 제대로 구동되지 않는다는 불만도 나온다. 문득 싸이월드가 생각났다. 미니홈피 없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고 PC마다 메신저 네이트온을 깔아 썼다. 사이버 머니 ‘도토리’는 하루 평균 1억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워크맨이나 타자기처럼 추억 속에 남았다.

과도한 유료화 정책, 개인정보 유출, 창업 멤버의 이탈, 대기업 특유의 경직된 조직 문화, 그룹에서 파견된 인터넷 비(非)전문가, 기술 혁신의 부재, 모바일 환경 적응 실패 등이 몰락의 이유로 거론됐다. 그룹 내 주력기업이 아니다 보니 변화를 위한 의사결정은 번번이 무시당하거나 판단이 늦었다. 의견 관철을 위해 그룹 내 정치에 신경을 더 많이 써야 했다. 오프라인에서 최고인 사람들을 배치했지만 온라인과 인터넷 문화를 이해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자신의 방식만을 고집했다. 환경 변화를 읽지 못했다. 성과는 낮았고 경력 관리에 문제가 생길 것 같은 걱정에 기회만 있으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그룹 내 다른 회사로 떠날 생각만 했다. 그사이 젊은 인재들은 회사를 떠났다.

KT도 올레TV를 개편해 지난달 말 시즌(Seezn)을 선보였다. 내년에 CJ ENM과 JTBC가 OTT 통합법인을 설립하고, 출시 첫날 가입자 1000만명을 확보한 디즈니+가 우리나라에 상륙하면 그야말로 OTT 서비스 회사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 놓이게 된다. 이 중 몇 개는 야후나 라이코스 마이스페이스 싸이월드 등과 같이 잊힌 서비스가 될 가능성이 크다. 통신사는 원래 있는 가입자를 기반으로 가격 정책만으로 편하게 OTT 서비스를 했고, 지상파 방송사는 과거의 영광 속에서 규제 탓을 하며 변화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셈법이 같건 다르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힘을 합친 것만은 분명하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우리 OTT 서비스가 잘됐으면 좋겠다. 하지만 양질의 독점 콘텐츠가 없다면 힘들다. 1960, 70년대와 같은 애국심에 기대할 수도 없다. 사용자는 싼값에 좋은 콘텐츠를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서비스를 선택한다.

전재우 사회2부 부장 jw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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