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싸우려는 적 분명하게 모르고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정체성마저 잃는 ‘三重苦’ 빠져
현 정부의 ‘무능, 불통, 부패’를 집중 부각하고, 국민 호응 얻는 투쟁 방식 깊이 고민해야


한 문명이 찬란한 정점을 뒤로하고 내리막길을 걸을 때, 사람들은 흔히 역사에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찾는다. 새로운 제국의 전쟁이 발발할 것처럼 보이는 요즈음 사람들은 다시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즐겨 읽는다고 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제국이 왜 갑자기 멸망하게 되었는가. 어떻게 하면 수많은 위기에도 불구하고 한 제국을 지속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은 꼭 국가, 제국 및 문명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특정한 이념과 정책을 추구하는 정당의 부침과 흥망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걷는다.

한국의 미래를 위해 자유한국당으로 대변되는 한국 보수의 존폐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조국 사태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문재인정부의 여러 실정과 문제에도 불구하고 보수정당은 부활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한국당은 “존재 자체가 역사의 민폐”이며 “생명력을 잃은 좀비 같은 존재”라는 통렬한 비판에 아무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내가 작년 여름에 쓴 ‘좀비가 된 보수정당’이라는 칼럼에서 “반동적 수구와 동일시되는 정치인들은 모두 물러나고 치열한 내부 논쟁을 통해 보수의 방향을 새롭게 설정하는 것”만이 좀비 상태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라고 하였지만 그동안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권력을 놓치지 않으려는 기득권 세력의 아수라장은 좀비 영화를 방불케 한다.

죽어도 죽지 못하는 존재인 좀비는 살아나려고 기를 쓸수록 더욱더 죽은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좀비가 된 보수를 되살릴 수 있는가. 한국정치의 미래를 위해 건전한 견제세력으로서 보수가 필요하다면 우리는 이 질문을 가볍게 대할 수 없다. 우리는 좀비 보수를 살릴 수 있는 길을 독일의 진보정당인 사민당에서 엿볼 수 있다. 동방정책을 추진한 빌리 브란트로 유명한 사민당은 경제구조를 혁신적으로 개혁한 슈뢰더 이후 점차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독일 정치의 미래를 위해서는 사민당은 진정으로 죽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사민당이 위기에 빠진 이유가 여럿 있겠지만 법학자 칼 슈미트의 정치 개념을 통해 바라보면 대체로 세 가지로 압축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슈미트는 정치적인 것을 “친구와 적의 구별”로 규정한다. 물론 슈미트가 말하는 ‘공적인 적’은 이념과 정책을 둘러싼 전쟁과 같은 대결을 통해 이겨야 하는 맞수를 의미한다. 전쟁이라는 말이 살벌하고 잔인하게 들리지만 정치는 사람을 죽이는 전쟁은 아니다. 국민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정치적 전쟁은 ‘죽이지 않는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지면 정당과 정치인은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소멸한다. 독일의 사민당은 보수 정당과의 오랜 연정을 통해 첫째 싸울 적을 잃어버렸으며, 둘째 싸우는 법을 잊어버렸으며, 결국에는 사민당이 누구를 위한 정당인지 그 정체성이 상실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좀비 정당은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데도 마치 받고 있거나 받을 수 있다고 착각하는 정당이다.

한국의 보수정당 한국당이 꼭 이 모양이다. 현재 한국당은 한국사회에서 누구를 대변하는지, 어떤 이념을 대변하는지를 제대로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 보수정당의 정체성은 2016년, 2017년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가져온 촛불시위로 증발해버렸다. 자유한국당이라는 이름은 ‘자유’와 ‘자유주의’ 이념을 덩달아 욕보일 정도로 비호감도가 높다. 자유우파 또는 자유민주주의와 같은 이념적 프레임에 매달릴수록, 한국당의 지지도는 떨어지는 좀비 상태에 빠진다. 우리공화당은 ‘공화주의’를 오염시키고, 한국당은 자유주의를 왜곡시킨다고 인식되는 현실에서 이념으로 승부를 거는 것은 실패의 지름길이다.

한국의 보수 세력이 좀비 상태에서 벗어나 2020년 총선을 이기는 길은 하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우선 싸워야 할 적을 분명하게 규정해야 한다. 물론 보수야당의 정치적 적은 두말할 나위 없이 집권정당인 민주당이다. 다음 총선은 어쩔 수 없이 문재인 정권에 대한 심판과 수호의 정치적 전쟁이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현 정부에 문제가 있다면 현 정부의 ‘무능, 불통, 부패’를 집약적으로 부각할 수 있는 프레임이 있어야 한다.

적을 규정하고 나면 제대로 싸울 줄 알아야 한다. 삭발과 단식, 그리고 필리버스터와 같은 극단적 투쟁에도 불구하고 보수야당에 대한 지지도가 꿈쩍하지 않는다는 것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국민의 호응을 받을 수 있는 싸움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단식 투쟁 이후 황교안 대표가 보여준 것은 민주적 운영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이는 과거의 보수와 다를 바 없다는 이미지만 강화할 뿐이다. 결국 보수가 누구를 대변하는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정체성은 불투명해진다. 한국 보수정당의 최대의 적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제대로 죽어야 다시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진우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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