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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옥의 컬처 아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뒷문을 허하라

미군기지로 둘러싸여 섬이 된 ‘보물창고’… 용산 공원 통과해 박물관 가는 길 내야


서울 용산구의 국립중앙박물관(이하 중앙박물관)을 즐겨 찾는다. 고미술을 좋아해 지인들과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서화를 보러 상설전시실을 자주 간다. 갈 때마다 그곳은 섬이라는 생각이 든다. 박물관을 용산 미군기지가 바다처럼 에워싸고 있어서다. 정문이 있으니 반도 같은 형국이지만 체감하는 접근성은 섬에 가깝다.

이곳은 국보 74점, 보물 258점을 보유한 우리 전통문화의 최고·최대 보물창고다. 아무리 좋은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으면 뭐하나. 접근의 불편, 부대시설의 결핍은 문화의 향유 잠재력을 갉아먹는다. 답이 없는 건 아니다. 반환 후 국립 도시공원으로 조성될 용산공원 부지를 통과해서 중앙박물관으로 가는 길을 내면 된다.

정부는 11일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서 미국과 제200차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합동위원회를 개최하고 용산공원의 차질 없는 조성을 위해 용산기지 반환 협의 절차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이미 주한미군사령부의 인원과 시설 대부분이 평택으로 이전한 상황이다. 용산공원 부지를 활용하는 우리 정부의 운신 폭이 커졌으니 국민의 문화향유권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적 고민이 이뤄져야 한다.

며칠 전 취재를 위해 신용산역과 인접한 용산기지 내 14번 게이트에 가봤다. 아모레퍼시픽 신사옥과 용산우체국 사이에 있는 이 게이트에서 ‘용산기지 버스 투어’가 시작한다. 여기서 10분 정도 걸으면 국립중앙박물관 북쪽 담과 면한 작은 문이 나온다. 이 문만 개방하면 그게 곧 중앙박물관 북문이 되는 셈이다.

큰 시설물이 드는 것도 아니다. 공원이 완공되기까지 14번 게이트에서 박물관으로 이어지는 미 10군단 도로의 보행권만 보장하면 되는 일이다. 한국인에게는 굳게 닫혔던 그 문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사용한 전례가 있다. 그는 2010년 중앙박물관에서 선진 20개국(G20) 정상회의가 개최됐을 때 용산기지에서 그 문을 통과해 박물관으로 입장했다.

중앙박물관은 잘 생긴 건축물이다. 정문이 제구실을 못 하니 그 당당한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이번에 전체 건축물을 뒷모습이지만 용산기지 안에서 비로소 온전히 보게 된 감동은 컸다.

용산기지는 1904년 러·일 전쟁 때 일제가 조선 주둔군사령부를 두면서 위수지역을 선포했고, 1945년 해방 이후에는 미·일 간 종전협정에 따라 미국이 일본의 군사기지를 접수하면서 미군 제7사단으로 넘어갔다. 사실상 110년 넘게 남의 나라 땅이었다. 접근 제한은 역설적으로 개발을 제한해 이곳은 도심 속 허파가 됐다. 용산기지 내 박물관으로 향하는 길에는 옛 일본군 작전센터였던 사우스포스트 벙커, 조선총독관저 터에 세워진 121병원 등이 있다. 그곳을 걷는 것 자체가 다크 투어다.

개방되면 용산기지 내 근대 유산과 국립중앙박물관의 전통 유산이 통시적으로 연결되는 동선 구조가 된다. 또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은 현대미술품의 전시 명소로 부상 중이니 동시대 미술까지 아우를 수 있다.

게이트 14번 근처는 신용산역의 역세권이다. 면세점도 있어 외국 관광객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 용산기지를 통과해 박물관으로 가는 지름길이 생기면 그들의 발길을 자연스레 중앙박물관으로 유도할 수 있다. 전통문화의 정수를 보유하고서도 위치 탓에 국립민속박물관에 밀렸던 중앙박물관이 명실공히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길이다.

공원이 개장하면 해결되는 문제긴 하다. 정부의 지금 계획으론 2027년이 넘어야 용산공원이 개장된다. 지금까지의 진척상황을 보면 이보다 늦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용산기지 반환 절차의 첫발을 내딛는 이번 합의가 용산이 과거 외국 군대 주둔지로서의 시대를 마감하고 우리 국민 품으로 돌아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니 할 수 있는 것부터 먼저 국민 품으로 돌리자. 이것은 국토교통부가 2018년 말부터 금단의 군사기지를 공개하는 ‘용산기지 버스 투어’를 실시하는 등 임시개방에 방점을 찍는 정책과도 부합한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신용산역과 국립박물관을 잇는 도로가 미군 용산기지의 최초 개방구역이 된다면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존중의 의미를 담는 것으로 상징적 의미가 크다”며 기대감을 표했다.

손영옥 미술·문화재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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